[충청일보 사설] 우리나라에서 법은 민심과 다르게 간다고들 인식한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 나라의 법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니라 피해를 가한 가해자 보호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이슈 중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한국 법원이 있다.

서울고법 형사20부는 지난 6일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판단하기 위해 연 세 번째 심문에서 범죄인 인도 거절 결정을 내렸다.

'웰컴 투 비디오' 관련 수사가 국내에서 진행 중이기 때문에 손정우가 미국으로 송환되면 남은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이라고 한다.

그러자 우리나라 법무부는 물론 미국 법무부와 검찰 역시 실망했다고 유감을 표하면서 국민적 공분이 거세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18년 성범죄에 단호한 판결을 내린 미국 법정의 일화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당시 미시간주 잉햄 카운티 법원에서는 치료를 한다며 미국 체조 대표팀의 어린 선수들을 성폭행한 주치의 래리 나사르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그는 30년 간 체조 대표팀과 미시간대학에서 팀닥터를 맡아오며 150여 명에 이르는 선수들에게 성폭력을 가했다.

공판에서 나사르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선처를 바란다는 반성문을 로즈마리 아킬리나 판사에게 제출했다.

그런데 아킬리나 판사는 이 반성문을 읽다 말고 내던져버렸다.

그는 "아직도 당신이 한 짓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이 편지가 말해주고 있다. 난 의사인 당신에게 내 반려견 치료도 맡기지 않을 것"이라며 징역 175년을 선고했다.

아킬리나 판사는 "당신에게 175년, 2100개월 형을 선고하고 방금 당신의 사형 집행 영장에도 서명했다"고 단호히 말했다.

"당신에게 이런 벌을 내리는 건 판사로서 제 영예이자 권한"이라고 한 그는 "오늘 판결은 내가 내리지만 두 번째 판결은 신이 내리실 것"이라 말했고 배심원들은 박수를 쏟아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A씨의 법률대리인과 여성단체들이 13일 기자회견을 했다.

고소인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대신 읽은 입장문을 통해 극한의 고통을 털어놨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A씨는 비서로 일하던 4년 동안을 비롯해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 뒤까지도 지속해서 성추행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박 시장 사망 후 경찰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A씨에 대한 온·오프라인에서의 2차 가해는 멈출 줄 모르고 있다.

비극적인 이 사건을 두고 박 시장 지지 여부나 정치 성향에 따라 입장 차가 극명하게 갈린다.

경찰은 박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관행 상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할 방침이라는데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덮어버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이 사건 때문에 박 시장의 삶과 공(功)까지 부정해선 안 되지만 되풀이되는 권력형 성범죄의 재발을 막으려면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를 따로 상기시켜야 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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