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월요일 아침에] 박기태 건양대 교수 

더운 날씨와 극성스런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몸도 마음도 지치기 쉬운 때이다. 그래서일까 일상에서 어떤 일 하나하나가 매듭지어질 때면, 사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음에 품었던 일로부터 멀어지고, 정들었던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에 조용하면서도 강력하게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배시시 미소를 띄어본다.

우리에게는 영혼을 살찌울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반드시 정서적인 만족을 얻는 시간이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영혼을 살찌우는 시간이란 각자의 사적인 공간에서 마주보며 온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시간을 화제로 올려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진지하게 경청하고 함께 웃고 웃으며 위로도 하고 격려하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그러한 시간이다. 그런 까닭에 여타한 것들은 단지 화제속의 매개체일 뿐이라고 여기고 싶다.

나는 여름을 무척 좋아한다. 특히 이슬비가 내리는 여름날은 회귀본능의 작용처럼 내가 사랑하는 무창포 앞바다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도록 자극한다. 그래서 매년 여름 그 바닷가에 갈 것을 간절히 원하지만, 언제나 바램으로만 그친다는 사실이 못내 서운하다. 젊은 날 세상이 날 버렸다고 자책했던 시절 원치 않는 사내 ‘알렉’한테 처녀성을 빼앗기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치듯 퍼덕이다가 깃털이 다 뽑혀버린 토마스 하디 작품 속 비운의 주인공 ‘테스’처럼 나를 체념하면서 찾았던 그 바닷가... ... 이제나 저제나 그 바닷가에 다시 가볼까! 무창포 바닷가는 언제나 나의 곁에 있으면서도 멀리 있다. 그곳에서 비가 내리는 그곳에서 나만의 위로와 정취를 찾아 영혼의 송가를 부르고 싶어 달려가고 싶지만 고작 동리 밖의 천변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현실이 측은하다.

바다는 나에게 그래왔던 것처럼 나의 영혼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평온하면서도 마치 거대한 침묵처럼 떠올라 머물고 있는 잔잔한 바다. 하지만 비를 먹음으로써 꿈틀거리고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비가 오면 바다를 그리워하는 나처럼 생기발랄한 것 같아서 행여 친구를 만나 듯 내가 위안을 받고 매혹되는 곳이다. 또한, 줄리엣 그레꼬(Juliette Greco)가 부른 우울한 샹송의 주인공처럼 산다는 것에 대한 부질없음 그 허무를 깨닫고 탐욕이나 허욕에서 벗어난다는 쾌감이 왠지 모르게 콧등에 알싸하게 잦아들어 상큼한 고독으로 센티멘탈 해진다.

내 주변을 스쳐간 가깝다고는 할 수 없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지극히 사무적인 일이 아니어도 될 법한 만남에서 무슨 고전적인 행사인 냥 맹물 한 컵이나 놓고 형식적인 화제로 공감대를 느끼며 인간적인 교분을 만들어 가는 척 위선을 떨었다. 카운터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며 뒷담화로 동료들을 중상모략하고 탐욕으로 자신의 허욕만 채우려는 그러한 종류의 인간이어서 남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거나 아픈 생채기를 보듬어 주리라 생각할 수 없는 철면피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공간에서 호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어울림과 공감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결국 서로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지나친 탐욕이나 허욕을 하나씩 버림으로써 영혼을 살찌우는 것은 아닐까? 만약 우리의 육체 속에 허영 된 욕망이 가득하다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것들을 얼 만큼 버려야 인간적인 교분을 쌓을 수 있을까?

내가 즐겨 애송하는 그리고 비오는 날에도 우울한 마음을 가시게 하는 정지용의 시한 구절이 떠오른다. 산호는 곧 꿈이며, 꿈은 꿀수록 슬픈 것이라고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생동감을 표현한 시이다.

바다는 뿔뿔이 달어 날랴고 했다. / 푸른 도마뱀 떼 같이 재재발렀다. /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 휜 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바다*2-

나는 내 자신을 예리하게 채찍질하면서 내가 세상에서 갖는 집착이나 애착을 하나씩 버리고 싶다. 부질없는 탐욕과 허욕을 버리지 못하기에 우리는 또 죄를 지으면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물론 나도 그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들 사이에는 아무것이나 뇌 깔이기 이전의 진지한 마음과 기억의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공간이 기름지고 비옥할수록 일상을 지켜 나가는 힘이 더욱 더 세지고 우리 영혼의 황홀한 꽃을 피우고 살찌우는 시간이 풍부해질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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