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후반 쯤 신문사를 찾아온 그를 처음 봤다. 그가 신문사를 찾아온 건 사회운동가에서 제도권 진입을 시도하는 정치인으로의 변신과 관계있지 않았나 싶다. 그뒤 '인간탐구' 성격을 띤 글을 연재할 때 그와 인터뷰하면서 그의 삶 면면을 들여다보게 됐다. 그를 알게 되면서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표도 가졌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서 그는 낙선했다. 그러나 그는 '여기까지?'라는 물음표를 말끔히 지우며 2004년부터 2012년까지 17, 18, 19대 국회의원에 내리 당선되며 3선을 이뤘다. 그는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다.

다소 억울했을 '시집 강매' 논란
2016년 우연히 만나게 된 자리에서 노 의원은 막걸리잔을 건네며, 이번에 북 콘서트를 열어 시집을 낼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학창시절 문인과 화가를 꿈꾸었던 그는 이미 '내 삶에 다가온 열 개의 성서구절', '시대를 일깨운 편지들', '현대사의 비극들' 등의 책을 발간했었다. 문체가 간결하면서도 단단하고 시대사의 이면을 꿰뚫는 논리정연함이 있었다. '참 좋은 생각'이라는 말에 노 의원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것이 비수가 돼 돌아올 줄은 몰랐다.
북 콘서트를 열며 카드기를 비치해 놓은 것이 문제가 됐는데, 그해 유독 사회를 휘감았던 '갑질논란'의 유탄이 카드기를 맞춰버린 것이었다. 결국 그는 '시집 강매' 논란으로 당원자격정지 처분을 받고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불출마에는 현재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인 김종인이 있었다. 
당시엔 민주당 비대위원장이었던 그는 "정치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분들은 당이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엄정대처를 주문했었다. 그런데 그 일을 찬찬히 복기해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봉투에 담긴 '깜깜이 금일봉' 보다는 투명하게 드러나는 카드기 사용을 권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그럼에도 국민이 가진 '도덕적 눈높이'를 두고 뭐라할 건 없다. 인간사 세옹지마라고, 친문핵심으로 꼽히던 그가 주중대사를 거쳐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됐을 때 무거웠던 마음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국민 눈높이는 엄정하고 가차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6·17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집값 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손익계산서를 펼쳐보면 사람마다 그 셈법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불로소득을 지양하고 공평성을 실현하며 빈익빈 부익부를 막아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더디고 힘들더라도 그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또 그 '유탄'에 노 실장이 맞았다. 서울과 청주 두 곳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발단이었다. 대통령의 강력한 부동산대책 실행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 서야 할 대통령비서실장이 두 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책 추진에 동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 실장이 청주 아파트를 매각하자 이번엔 아파트 금액을 놓고 비난이 쏟아졌고 서울 아파트까지 매물로 내놓으며 그는 졸지에 '무주택자로 전락'하게 됐다. 다소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할 수도 하지만,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는 엄정하고 가차없다. 뒤짚어 말하자면, 공인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높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해서 조금 억울하더라도 두 눈 들어 높은 하늘을 쳐다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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