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성 수필가·벨로체피아노 대표

[기고] 이대성 수필가·벨로체피아노 대표 

그와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지난 18년을 함께했었는데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서운함과 아쉬움,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알지 못할 슬픔도 밀려왔다. 길가의 이팝나무에는 하얀 꽃이 시리게 빛을 발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은 피할 수 없는 세상사라고 익히 알고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쿨하게 이별을 고하고자 했건만 눈동자는 허공을 친다.

그와의 첫 만남은 설렘 그 자체였다. 첫 모습이 그렇게 멋지고 힘차 보일 수 없었다. 깨끗한 외모와 우람한 마스크는 나를 한눈에 압도했다. 그의 몸에서 내뿜는 광채에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았고 그의 힘찬 심장 소리는 나를 묘하게 기분 좋게 했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그와 만남은 내 생활에 즐거움을 더했고 내 삶의 질을 한층 높여주었다.

그와의 동행은 언제나 편했다. 내가 어디로 가든지 불평 한마디 없이 따라 주었다. 급한 일이 있어 빨리 가자면 함께 달렸고 천천히 가자면 천천히 가고 좀 쉬었다 가자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쉬었다 갔다. 또 몇 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아무리 먼 거리도 함께했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커지는 무척 가파른 오르막길이어도, 미끄러운 내리막길일지라도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함께했다. 돌풍이 몰아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건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며 눈이 오는 날일지라도 내가 가자면 어디든 동행했다. 일에 지치고 힘들 때도 내가 바라는 목적지까지 그는 늘 함께했다. 전국 방방곡곡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든든한 나의 동반자였다.

장마가 오래되던 어느 해는 비 맞은 그의 초라한 모습이 안타까워 화창한 아침을 기다리던 때도 있었다. 어느 때는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쉽게 가기 위해 주변 경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도 많았고 여유의 맛도 못 느끼고 지냈던 날도 많았다. 인생의 길은 때로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요구하기도 하고, 길은 멀어도 그 안에 휴식과 예술과 사랑도 있다고 하지만 놓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면 어디를 가든 편안했고 함께한 시간은 행복했다.

어느 날은 그가 너무 아픈지 신음하며 꼼짝도 하지 않고 내 속을 태웠던 적도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거의 매일 나의 손발이 되어주었는데 그게 당연하듯 받기만 했었다. 그에게 좀 더 살갑게 사랑과 배려로 대하여야 했는데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나 보다. 내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가서 아픈 부위를 살펴보고 치료를 하고서야 다시 기운을 차리고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언제 아팠었냐는 듯 나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전혀 없이 예전과 같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대했다.

오늘 마지막 여행에서 돌아오면 이제 그를 놓아주려 한다. 그동안 그와 함께 여행한 거리는 어림잡아 지구를 여덟 바퀴 반을 돌 정도의 거리를 함께 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첫인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을 시간인 지난 추억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때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 아쉽지만 그를 영영 떠나보내려 한다. 이별은 사랑을 알게 하고 떠나보내고서야 비로소 고마움을 더 알게 된다고 한다. 좀 더 부드러운 손으로 어루만져 주며 좀 더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을 걸 하고 후회도 해 본다. 그동안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어떤 만남이었건 이별은 슬프고 아픈가 봅니다.

어두운 폐차장에 그를 남겨두고 나오는 나의 발걸음이 무겁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 본다. 마지막이란 다 이런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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