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 성명학 박사

 

[세상을 보며] 김형일 성명학 박사

나는 궁금했다. 외부 강의를 오가면서 기와 담장 넘어 피어난 백일홍을 볼 때마다 정말 100일간 꽃이 필까라고 말이다. 백일홍(百日紅)은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약 100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 하나는 풀에서 다른 하나는 나무에서 자란다. 같은 계절에 피고 지지만, 자태를 표현하는 방식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확연히 달라 보인다.

백일홍은 멕시코가 고향인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백일초(百日草)와 중국에서 들어온 낙엽활엽 소교목인 배롱나무(木百日紅)로 구분한다. 백일초는 3~15cm의 작은 꽃망울부터 커다란 꽃송이까지 고혹적이고 선명한 빨간색이 하늘을 향해 화려하게 뽐내고, 배롱나무의 진한 분홍색 꽃망울은 나뭇가지 끝마다 원뿔의 꽃다발 모양을 이룬다. 한꺼번에 피는 것이 아닌 하나의 꽃이 지면 다른 꽃이 연속적으로 핀다.

조선후기 문신 오도일(吳道一)은‘백일홍을 읊어 파촌과 같이 지음’에서 저녁 달빛 아래의 비춰지는 배롱나무의 자태를 마치 곱게 화장한 여인인양 묘사하였다. 또한 아침과 저녁의 배롱나무 모습을 꽃은 아침 햇빛(日)과 같고 잎은 저녁에 내리는 비(雨)처럼 묘사하였다.

그래서일까 지난주부터 내린 장맛비에 흠뻑 젖은 백일홍을 보며 이틀 전 상담한 40대 중반의 여성이 생각났다. 그녀의 사주자화상은 일 년 내내 피는 백일홍 같았다. 그녀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사소한 일로 쉽게 짜증내고,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분노하는 자신을 알고 싶어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네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3세 무렵 부친이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편모슬하에서 자랐지만 조부모 등 주변 친인척의 사랑을 듬뿍 받아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첫사랑을 만나 3년의 교제 끝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하지만 배우자와 10살 나이 차이로 결혼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어느새 두 아들은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 재학 중으로 이제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악화된 건강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수술 이후 더욱 온몸이 후끈후끈하여 겨울에는 창문을 열어놓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켜야 잠들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성격은 더욱 조급해져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태어난 일간은 갑목(甲木)이며 진월(辰月)에 태어났다. 계절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淸明)의 절기로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계절이다. 진월은 양기(陽氣)가 사방으로 확산되어 만물이 자라고 움직이는 시기이다. 여기에 그녀의 일간 갑목(甲木)은 화오행(火五行)이 빙 둘러싸여 있었다. 더욱이 이를 중화(中和)하는 오행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배롱나무는 뜨거운 열기에 한 겨울에도 꽃을 피웠다.

그녀가 상담실 문을 나서며 ‘하루하루가 조급해서 못 살겠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마음의 균형이 무너지면 조급함과 불안함을 갖게 된다. 불안을 자극하는 원망·미움·불만·공격성 등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면 신체의 생리적 변화는 어쩔 수 없지만 조급한 마음이라도 평온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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