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열아홉 앳된 소녀, 청순한 코스모스를 닮았다. 한창 예쁜 꿈을 꿀 나이에 독립투사가 된 한 여인의 삶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 본다. 충북 청주 출신 여성독립운동가 이국영이다. 1921년 태어나 1956까지, 서른다섯 해 동안 이승에서의 짧은 생은 조국을 위해 활활 타오른 불꽃이었다. 일제강점기, 광복 그리고 6.25 한국전쟁, 우리 역사상 가장 참담한 기간에 어둔 길을 밝힌 등불이 아니었나 싶다.

그녀는 독립운동가 이광을 아버지로, 함께 독립운동을 한 김수현을 어머니로 두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이국에서 눈 뜨고 접한 것이 독립운동이요. 만나는 이들 역시 같은 의지로 뭉친 사람들이다 보니 배우자도 그들 속에서 만난다. 운명이라는 것일 게다. 매달 나는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연재하면서 도대체 나라가 무엇이기에 이리 온 가족이 목숨을 내놓고 위하는 것인가. 마음이 먹먹해진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면 기꺼이 맞아 즐기었던 것인가.

이국영은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설되자 어머니 김수현과 함께 가입하여 대의원으로 선출되고, 본격적인 항일운동에 앞장선다. 특히 1941년 설립된 3.1유치원에서 교사로, 교민들의 자녀들을 교육했다. 충주 출신의 연미당 과 임시정부의 안주인 역할을 했던 정정화와 함께 했다.

또한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생계부 부원으로도 맹활약을 했다. 짧았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한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꺼져가는 한 나라를 지켜가는 구국의 전사로서의 강인함이 온 몸으로 전해온다. 거친 바닷길을 항해하는 대한민국 호를 혼신으로 밝힌 등댓불이었다.

‘한국혁명 여성동맹 창립기념’ 단체 사진을 보면 옆 가르마를 한 단발머리에 두 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앉은 소녀, 국영이 있다. 청순하고 가녀린 여고생의 이미지가 그대로 느껴진다. 아리따운 그 모습 어디에서 이리 굳세고 강인한 의지가 들어 있어 큰일을 해 낼 수 있었던가. 물려받은 핏줄 속에 흐르는 구국애가 따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교육의 힘인지….

아버지 이광은 한성사범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을 수료한 인텔리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승승장구할 수도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애국계몽단체인 신민회에 가입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험난한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정부수립에 참여하였고, 1948년 귀국하여 충북도지사를 지냈다. 1963년 독립 유공이 인정되어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어머니 김수현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동생 김윤장, 윤철에게는 애국장과 애족장이 수여 되었다.

남편 민영구는 독립운동가 부친을 따라 11세에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의 길에 동행한 동반자이다. 1940년 광복군이 창설되자 주계장에 임명되었고, 그 후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요인과 함께 항일선전공작 활동을 했다. 1947년에 귀국하여 해군에 입대, 해군소장으로 예편하였고,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당시 좋은 가문에서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처지를 마다하고 독립 운동에 뛰어든 이국영 일가는 가문보다는 나라를 우선했다. 지금의 정치인들과는 너무도 딴 세상의 일이다. 난국에 피어난 한 떨기 불꽃, 이국영의 일생에 정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고 그 꽃다움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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