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충청논단] 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안방 유리창에 비바람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여 새벽녘 일찍 눈을 떴다. 거실에 나가 창문을 열어보니 굵은 빗방울이 산만하게 흩뿌려진다. 살며시 열린 창문 틈으로 튕겨지는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는 순간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여름의 한복판이 되면 비바람을 몰고 오는 장마가 기다려질 때가 있다. 얼마 전부터는 어떤 계절인지 분간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이제 막 봄이 온 것 같은데 여름이고, 더운 여름인 것 같은데 선선한 가을 기분을 느끼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름 장마철에 장대비가 쏟아지면 가을 날씨처럼 시원하고 청량하다. 아무리 변화무쌍한 계절일지라도 매번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사계절이 다가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침 일찍 안개가 자욱한 산책로를 걸어갈 때면 숲속의 신선한 기운이 온몸에 생명력을 가져다준다. 더욱이 새벽안개가 주변에 사뿐히 내려앉은 모습을 보면 아스라이 운치가 더해져 아름답다. 느지막이 아침 이슬에 촉촉이 피어난 탐스러운 꽃들이 싱그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초록의 숲속에 머무는 순간 저절로 마음이 정화되고 한편으로 편안해진다. 한여름 햇살이 뜨거워지기 전에 산책하는 편이 훨씬 좋을 듯하다. 숲속에서 청량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실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이 가져다준 하나의 큰 축복이다.
사춘기 고교시절 친구들과 함께 시민문화관에 있는 문학동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한 적이 있다. 당시 문학적 소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시절 동년배와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가끔 철학적 관점에서 존재와 삶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서당 개 삼년에 풍월을 한다는 말처럼 나름대로 철학적 사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 경험이 성장기의 고민과 불안을 극복하고 삶을 지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변함없이 사계절이 매번 반복된다는 사실을 통해 자연의 위대함을 배웠으며, 부모님의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나무처럼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전반의 문제가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과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혼돈의 상황에서 빠져나오려면 문제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하나씩 객관적으로 검토하여 좀 더 나은 대안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주장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하더라도 남의 말을 들어보고 주장이 옳다면 동의할 수 있을 때 생각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공자는 300편이 넘는 시경의 시를 한마디로 말해 “마음에 조금도 나쁜 일을 생각함이 없다(시삼백 詩三百 일언이폐지 一言以蔽之 왈,사무사 曰,思無邪)”라고 하였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주장도 옳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사고의 전환이 바람직하다. 아무리 세상의 모습이 급변하고 문제가 많을지라도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힘은 바로 윤리와 정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No pain, no gain). 인생은 크고 작은 고통의 연속이다. 성장기에 있는 사람만이 성장의 고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을까. 종교에서 말하는 부활(復活)이나 생불(生佛)이 되기 전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생각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고통을 없애버리는 것이 어렵다면 즐기는 수밖에 없다. 인생은 고통을 겪으면서 배워가는 과정이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외부의 충격으로 변화한다.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충격이 일정한 선에 이르면 변화하기 마련이다. 과연 고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자신이 머물고 있는 안전지대를 벗어날 때가 아닐까 싶다.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 머물 때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대장장이는 쇠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불에 달군 다음 망치로 강하게 내려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무쇠처럼 점점 단단해진다. 삶의 발전을 가져오려는 생각이 클수록 고통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고통을 느끼는 것만으로 저절로 발전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반드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고통과 성찰이 합쳐질 때 비로소 한 단계 삶이 성숙해진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