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중력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시공간 영역, 질량이 매우 큰 별의 진화 마지막 단계에서 만들어지며 구성 물질이 사방에서 붕괴되면서 중력에 의해 부피가 '0'이고 밀도가 '무한대'인 한 점으로 압축되는 곳, 검은 구멍의 중심이며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는 경계선 안쪽을 이루고 있는 곳,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는 탈출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커서 빛조차 우주공간으로 벗어날 수 없는 곳, 태양 질량의 3배가 넘는 무거운 별들만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형성되는 검은 구멍. 2019년 4월 10일 인류 역사 최초로 관측하고 촬영한 영상이 공개된 것, '블랙홀'이다.

수도권은 모든 것 삼키는 블랙홀
이성계가 개국 2년여 만인 1394년 10월 28일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긴 이래 서울은 조선의 중심지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지속적으로 넓혀왔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은 제주도는 말이 살기에 적합한 땅이요, 서울은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라는 말이었을 터. 2020년 기준 973만6962명이 살고 있는 서울, 수도권 인구는 2596만명이다. 비수도권 인구 2582만명을 넘어선다. 마치 그런 형국이었다. 블랙홀이 돼 버린 수도권이 대한민국의 모든 인구를 거침없이 빨아들이고 있는 형국 말이다. 말이 제주도에서 살만하듯, 사람이 서울에서 '살만한 환경'이기 때문이었을까. 편중돼 있는 인프라는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공룡을 만들었고, 거칠 것 없는 그 공룡은 우리나라를 중심부와 주변부, 메이저와 마이너, 주류와 비주류로 갈라놓았다. 그로 인해 파생돼온 폐해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수도권은 비대화와 집중화에 따른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환경오염의 심화, 과포화된 교통문제 등에 시달렸고, 비수도권은 수도권 쏠림현상에 따른 '지방 소멸론'의 위기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예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낙후성을 면하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주변인'의 소외감에 무기력했었다.

시대정신 담은 새로운 변신 필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메가톤급 이슈를 던졌다. 세종시로 국회와 청와대, 정부 부처를 통째로 옮기자는 것이다. 그의 제안은 17년 전의 노무현 대통령을 소환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대선 공약으로 충청으로 수도를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대통령이 된 뒤 실제로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만드는 특별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 헌법이 존재한다'라는 게 헌재의 결정문이었다. 성문법을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뜬금없는 '관습법 적용'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 결정이 무리한 법 적용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 크게 다툴 필요는 없다. 헌재의 법 해석이라는 것도 소위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국가균형발전의 당위성에 대해 국민적 여론이 지지를 보내고 있고 정치적 지형 또한 많이 변한 이 시점에서 수도권 블랙홀로부터 우리가 탈출하기 위해 가장 우위에 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꼼꼼히 되짚어봐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생긴다. 그 당시 헌재의 결정이 시대정신에 부합된 것이었다고 친다면, 지금의 시대정신을 담은 새로운 변신, 개헌 또한 대의명분에 부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정수도의 세종시 이전은 충청권만 잘살자는 게 아니다. 국가균형발전의 초석으로 삼아 여타의 지역에도 상생의 시발점으로 작동돼야 한다는 것이다. '주류 국민'과 '비주류 국민'이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다만 '미완의 혁신도시'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통합당도 이에 대해선 대승적 차원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정주여건 조성 등 인프라 구축의 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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