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삶에 지쳐 만사가 귀찮을 때, 나만의 돌파구로 찾는 방법이 있다. 도서관 아동열람실을 가거나 중고책방을 기웃거리는 일이 그 방법인데 동화책은 글씨가 커서 안경을 쓰지 않고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책 몇 권쯤은 부담 없이 읽을 수가 있어 만족도가 크다.

가끔은 큰 울림을 주는 동화를 만나 기쁘다. 동화가 아동만 읽는 책이라는 고정관념은 이미 깨졌다. 더구나 한 자리에서 여러 권을 뚝딱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쌓아가며 책 읽기에 몰두하는 순간만큼은 삶의 무게가 가볍다.

최근 백희나 아동 문학가의 책 ‘구름빵’을 구매했다. 스웨덴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스웨덴 예술위원회가 국민의 세금으로 제정한 국제적인 상인데 ‘구름빵’이 이 상을 받은 작품이라 몹시 궁금해서였다.

저자는 무명 시절 몇 푼의 돈과 ‘구름빵’의 저작권을 맞바꿨다. 그 후 책의 저작권을 가진 출판사에 의해 뮤지컬, 캐릭터 상품, 텔레비전 시리즈로 대박이 났고 저작권 분쟁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저자는 재판에서 지고 말았단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아무 글도 쓸 수가 없었다고 하니 물질적 이익의 혼란 앞에서 정신세계가 맥없이 무너졌나 보다.

비가 오는 날, 나뭇가지에 조그만 구름이 걸렸다. 아이들은 구름을 따서 엄마에게 가져다주고 엄마는 구름을 반죽해서 빵을 구웠다. 빵을 먹은 엄마와 아이들은 구름처럼 하늘로 떠올랐다. 그 순간 아침 식사도 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출근한 아빠가 생각나 그들은 다 함께 빵을 가져다주기로 한다·····

이는 책의 내용을 대충 옮겨 적은 것이다. 한 권을 다 읽기는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으며 읽고 또 읽고 아마도 수십 번은 반복해 읽었던 것 같다. 또한, 아무리 반복해 읽어도 먹먹해진 가슴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만큼 감동을 주니 책 속에 숨겨진 노고가 눈물겹다.

책 속의 그림들은 무채색에 가깝다. 등장인물은 어린아이이고 글 내용도 동심의 나래를 펴기 충분하다. 그러나 어른인 내가 보기에는 깊다 못해 음습하다. 짧디 짧은 문장 하나마다 삶이 통째로 담겼으며 읽는 이에게 주는 울림 또한 대북 소리 같으니 아동이 읽었을 때 책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읽어낼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한화로 6억 원이 넘는 상금을 비롯해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상을 받았으니 저작권을 잃고 겪었던 아픔이 크겠지만 상으로나마 작은 위안을 받길 바란다.

사고 싶은 책이 또 생겼다. 영국 작가에 의해 1895년에 발표된 동화인데 자식들을 키우면서 자주 읽어주어 내용도 훤히 알건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이상한 나라를 진심으로 이해해보고 싶어서라고나 할까.

이상한 나라는 세계 지도 어디를 뒤져봐도 없다. 그러나 국제뉴스를 비롯해 국내 뉴스를 접하다 보면 전 세계가 전부 이상한 나라 같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국이고 대단히 잘 사는 줄만 알던 미국. 한때는 그곳으로 이민 간다고 하면 대단히 부러웠던 나라. 이제는 국민이 코로나 19로 죽어가도 나라가 책임지지 않는 나라. 대국이란 나라들도 하나같이 작은 반도의 국가 대한민국을 향해 혀를 날름댄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의 임기는 4년에서 5년인데 비해 왜 법관은 10년씩이나 임기를 보장해줘야 하는가. 경찰청장이나 국세청장은 국정조사에 나와서 꼬박 업무 보고를 하는데 왜 검찰청은 구한말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쓰던 총장이란 호칭을 고집하며 단 한 차례도 국정조사를 받지 않는가. 순식간에 100만 건이 넘도록 집중투하 한 전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터무니없는 언론 기사는 공판이 거듭되면서 왜 사과나 정정 보도도 없이 슬그머니 삭제되고 있는가. 마구 쏟아지는 억지 보도를 믿으며 이쯤 되면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들은 이제 와 왜 침묵하는가. 참으로 이상한 나라이다.

일반인도 다 아는 사실을 특정인은 모르는 나라, 진짜 모르는 것인가,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몇백 년의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인간 세상에 깊게 자리 잡아 꼭 읽어야 할 고전이 된 책의 저자는 이런 사실을 예견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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