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동성초등학교 교사

 

[기고] 박효진 동성초등학교 교사

"라떼는 말이야."이 말은 직장 선배가 후배에게 과거 자신의 직장이나 일상에서의 경험담을 꺼내놓을 때 사용하는 관용어인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유희하며 만들어낸 유행어다. 선배들은 왜 이렇게 옛날이야기를 꺼낼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선배는 지금의 회사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고 고집스럽게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싶은 것일까.

어느덧 직장에서 선배와 후배의 숫자가 비슷해진 나이에 들어서니 나에게도 옛날이라고 할 만한 추억이 쌓였다. 그 추억을 찾아 최근 존폐 위기에 처한 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다. 최근 여러 사안으로 근근이 생명을 연장해가고 있는 그 사이트는 다행히도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저장하고 있었다. 신입 시절부터 하루하루 쓴 일기와 가끔 올려둔 사진은 대학 시절은 물론 교직 생활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의 기록을 샅샅이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에 걸쳐 올려둔 글을 한글 문서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디지털 세계 속에서 아날로그 방식의 수작업으로 과거를 복제하는 일은 꽤 지난한 작업이었다. 한 삽 한 삽 땅을 파 담듯 하나씩 하나씩 과거의 추억을 퍼 나르며 시간 여행을 하는 동시에 과거의 나와 마주했다. 어리둥절하게 시작했던 첫 출근, 그런 나를 묵묵히 도와주었던 동료,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었던 선배, 때론 이해하지 못했던 관행에 대한 내 속내. 이렇게 공짜 시간 여행을 하다니, 일기 써 놓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과거를 들춰보니 '나 때는 말이야' 하며 호기롭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하는 자책도 하게 되고, '나도 그때는 그랬지' 하며 나에게 관대해지기도 한다. '나는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며 합리화도 하게 된다.

선배들이 '나 때는 말이야'하고 이야기를 꺼내는 건 지금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과거가 무조건 옳았다고 생각하며 하는 푸념이 아니다. 아마도 그때 '그 사람'이 그립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때 '그 사람은' 바로 그 시절의 '나'다. 돌이켜 볼 수는 있지만, 돌아갈 수는 없는 그 시절 '나'.

가끔 그 시절 '나 때'를 소환해 보자. '나 때'만큼 소중한 지금의 시간과 '나 때'만큼 소중한 지금의 '나'를 마주할 수 있을 테니. 덤으로 '나 때'를 말하는 선배와 '나 때'는 없었을 것 같은 후배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게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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