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벌써 쉰 중반을 넘긴, 남들로부터 '중늙은이'로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인데도 아직까지 군대에 다시 들어가는 꿈을 꾸곤 하는 것은 그 푸른 제복에 구속 당했던 내 젊은 날의 초상이 너무도 강렬했던 탓은 아닌지. 그 강렬함은 불합리가 합리로 둔갑하고 불의가 정의로 환치되며 조직의 논리 앞에 개인의 창의는 손쉽게 묵살되는, 숨기고 싶은 기억 저 편의 트라우마와 같은 것. 하면서도 '군기'를 금과옥조처럼 뼛속까지 새겨 '라떼는 말이지…'를 자랑스런 훈장처럼 내어보이며 선배들로부터 이어져 온 불합리한 구타와 얼차려와 군기잡기를 자연스럽게 행하던 또 다른 나를 바라보게 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편린들 때문은 아닌지. 끔찍하게도 비이성적인 그 조직에 동화되지 못하면 마치 고문관으로 낙인찍히고 마는 조직과 위계에 대한 두려움.
푸른 청춘을 푸른 제복의 틀 안에서 보냈던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이렇듯 군대를 부정적으로만 느낄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자조적 말로 소중했던 젊음의 한 구간을 삭제하고 싶어 한다는 공감대는 있을 듯도 싶다. 그것은 '당나라 군대' 운운하고 '요즘 군대 너무 좋아졌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후임이었던 시절을 까마득하게 잊은 선임들이 후임들에게 강요하는 '본전의식'을 도돌이표처럼 심어주려던 자신의 젊은 날을 돌아보는 낯 뜨거움일지도 모르겠다.

병력은 적고 지킬 곳은 많다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귀신 잡는 해병도 월북자는 잡을 수 없는 것이냐"고 했고, 같은 당 신원식 의원은 "대적관 해체로 장병의 정신무장이 이완되니 경계작전 태세가 해이해진 것"이라고 했다. 그럴까? 귀신 잡는 해병의 용맹함이 무뎌지고 군기가 빠져 그런 것일까? '군기'가 지니는 양면적 성격은 차치하더라도, 군기가 있었다면 이번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까에는 의문이 남는다.
물론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 지니는 의미는 무겁다. 그런데 '귀신잡는 해병'이 허술한 월북자 한 명 잡지 못한 까닭에 대한 대답은 많다. 병력은 적고 지켜야 할 곳이 너무 넓기 때문. 해병대 2사단의 경계책임 지역이 255㎞로 휴전선 250㎞보다 길다.  귀신 잡는 해병이 아니라 귀신 할애비 잡는 해병이라도 애초부터 책임구역 커버에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새옹지마의 계기가 됐으면
어찌됐든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들이 이번 사건으로 줄줄이 문책을 당했다. 합참은 허술한 경계 태세의 책임을 물어 수도군단장과 해병대사령관에게 엄중 경고하고, 강화 지역을 책임진 해병 2사단장 백경순 소장을 보직 해임했다. 동향인데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라는 인연이 있는 백경순 장군은 말수가 적고 진지하며 남을 이해해주는 품이 넓었던, 그런 친구로 기억된다. 세상 일이 참 얄궂은 것이어서, 그가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해병대 연평부대장을 맡았을 때 연평도 포격사건이 벌어졌고, 이번엔 그가 사단장으로 있는 해병 2사단에서 월북사건이 터졌다. 귀책사유가 있다면 응분의 조치가 뒤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개인적 친분이란 것이 자꾸 그에게 착잡한 마음을 쏠리게 한다. 인간사 새옹지마, 삶이란 것에 또 다른 반전이 있을 것이라는 방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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