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충청칼럼]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두 아이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대장암 4기 진단을 받고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 25차례의 방사선 치료와 39번의 끔직한 화학요법을 견뎌냈지만 죽음은 끝내 그녀를 앗아갔다. 두 아이의 엄마는 죽기 직전 자신의 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남겼다. “살고 싶은 날이 참 많은데 저한테 허락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가 되어 함께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죽음을 앞두니 그렇더라구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 소리 질렀던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딸 아이 머리도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 저만 아는데, 앞으론 누가 찾아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를 얻은 덕에 아들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쁨을 누리고 떠날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복부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요? 그거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 번 뽑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꽉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이상의 글은 ‘어느 두 엄마의 마지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SNS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이다.

이 글을 읽다보니 김수환추기경님의 글이 떠오른다.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우산을 더 이상 펼치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사랑이란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는 것이요. 이별이란 하나의 우산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연인이란 비 오는 날 우산 속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요. 부부란 비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비를 맞으면 혼자 걸어갈 줄 알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우산이 되어 줄 때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요즘 정치권 뉴스를 보면 여당과 야당이 투견장에서 투견싸움 하는 것 같다.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제발 그만들 좀 하셨으면 한다. 아직 사실 날이 많다고 생각들 하셔서 그러신가. 두 엄마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어보시고 이런 심정을 1%라도 가져보길 소망해 본다. 민초들은 큰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비 오는 날 우리들에게 찢어진 우산이라도 되어주면 안될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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