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장염으로 보름은 고생하여 음식을 가려야했다. 그래서일까. 빨갛게 익은 천도복숭아를 베어 물고 싶다. 핏빛 자두도 그렇고 제철 과일이 눈앞에 한 가득이지만 아직은 그림의 떡이다. 여린 열무로 담근 김치를 얹고 보리밥에 참기름을 넣어 썩썩 비비는 상상만으로 군침이 돈다. 생각 난 김에 김칫거리를 챙겨 들어 왔다.

뿌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줄기만 소금에 절구어 놓고 양념 준비를 한다. 쪽파, 마늘, 생강을 다지고 양파와 홍고추를 갈아 액젓으로 간을 한다. 미리 풀을 쑤어놓은 것과 한데 섞고 헹구어 낸 열무와 한쪽에서부터 양념을 비빈다. 오늘의 기미상궁을 자처한 아들이 몇 차례 맛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간을 볼 수 없으니 그저 믿을 수밖에 없다.

그해 여름은 혹독하리만치 더웠다. 실습사원이었던 나는 대중교통으로 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 했다. 무악재 언덕에서 버스를 갈아타거나 걸어서 큰 언니 집으로 갔다. 실습비로 생활하다보니 최소한의 지출을 해야 했다.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두 정거장 정도는 걷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멀미가 나서 걷다보면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분식집이 보였다. 유리창에 김밥, 쫄면, 라면 등의 메뉴가 쓰여 진 여느 분식집의 풍경이었다. 배가 어지간히도 고팠지만 그냥 지나치려는 순간 눈에 들어온 여름 특별 메뉴인 열무국수가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자주 해 주시던 그 맛이 그리웠다. 아니 어머니가 그리웠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느 순간 국물부터 한 숟가락 떠 맛을 보고 새콤달콤함에 후루룩 하고 국수를 넘기자 고단한 서울생활의 숨통이 트였다.

텃밭에서 속아낸 여린 열무로 담가 주셨던 어머니의 김치는 십리 길을 걸어 학교를 다녀오면 마루의 동그란 상에 차려졌었다. 어느 날은 비빔밥이 되고, 비빔국수가 되기도 했으며 다른 반찬이 없어도 된장국과 사이좋게 놓여 있었다. 떡을 먹을 때도 입가심을 하고 술 빵을 쪄 줄때도 함께 자리를 차지 했으며 찐 감자와도 궁합이 좋아 곁들여 먹으면 속이 개운했었다. 김치가 익으면 아버지는 요즘 사람들이 음료수를 마시듯이 국물을 사발 채 들이키시면서 시원해 하셨었다.

부엌은 나게는 쉽지 않은 영역이었다. 결혼을 해서도 어머니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가까이 사는 언니 덕분에 민망하지 않은 밥상을 차릴 수 있었다. 아침잠이 없는 남편이 가족을 위해 밥을 짓는 것이 자신의 즐거움이란다. 덕분에 심간은 편하다. 아이들도 부엌을 드나들며 인터넷에 떠도는 요리법을 시도해보는 가족 공유의 공간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나만의 음식으로 아이들의 추억 속에 남고 싶다. 어머니의 열무김치처럼 타지의 어느 골목길에서 맞닥트린 밥상을 받고 나를 떠올렸으면 하는 것이 욕심일까. 그것은 기억되는 사람의 마음보다 추억하는 아이들이 행복하고 행여 인생에서 작은 가시라도 가슴에 남는다면 치유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긴 장마에 날씨가 후텁지근하다. 마침맞게 익은 열무김치를 보시기에 담아낸다. 맛은 장담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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