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한 그루의 나무를 빌려서도 사람을 살필 수가 있다. 나무의 삶은 잎을 피우고 꽃을 틔워 열매를 맺는다. 나무는 이를 위하여 철따라 해야 할 일을 어김없이 한다. 다만 나무는 이러한 삶을 해마다 되풀이 하지만 사람은 해마다 새롭게 하려는 욕망을 갖는 것이 다를 뿐이다.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한다. 그런 송아지 같은 사람은 어딜 가나 화를 만들고 남을 해치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람은 덜 된 사람이고 모자란 사람이다. 나이만 먹고 철없는 인간을 싹이 노랗다고 한다. 나무로 치면 잎 구실을 못할 이파리에 불과함을 말함이다. 제구실도 못하고 떨어져 버린 나뭇잎 같은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사람은 엉덩이에 뿔이 나지 않는다. 

서툰 목수가 연장 타령을 일삼는다. 자신의 손재주가 없음을 한탄 하지는 않고 연장이 나빠서 목수 질을 할 수 없다면서 핑계를 둘러댄다. 연장을 다루는 기술을 열심히 연마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연장이 집을 지어주고 농이나 궤를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는 목수는 정신 나간 인간과 같다. 

덜 떨어진 인간은 열매를 맺지 못할 싱거운 꽃떨기와 같다. 내가 할 일을 남에게 넘겨서도 안 되고 내 잘못한 일을 남의 탓으로 돌려도 안 된다. 일이 잘되면 그만큼 내가 땀을 많이 흘린 것이고 일이 잘못되었으면 그만큼 내가 빈둥대었거나 아니면 하는 척만 하고 속였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꽃을 피울 수 있는 잎이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꽃일 것이다. 꽃을 피우려고 열심히 햇빛을 빨아들이는 잎과 열매를 맺으려고 열심히 향기를 피우고 꿀샘을 채워 벌이나 나비를 부르는 꽃은 영글고 속이 찬 결실을 얻는다. 그렇게 성취된 삶을 나무는 열매로 드러낸다. 

사람 역시 그러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삶을 살아가야한다. 그러나 그러한 열매를 얼마의 돈으로 따져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값으로 따져야 한다. 그대는 난 사람인가 아니면 된 사람인가? 이렇게 물어보라. 항상 성인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우리로 하여금 답하게 한다. 싹이 터서 꽃으로 피지 못하는 것도 있고 꽃으로 피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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