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인 전 농관원 충북지원 품질관리과장

사람들은 순간 순간 하루에도 몇 번씩 상념(想念)에 잠길 때 슬픈 일과 기쁜 일들이 교차(交叉)하며 지나갈 때가 많다. 먼 옛날 사냥으로 먹고 살던 시절과 지금의 우리들의 삶을 비교할 때 어느 시절이 즐거웠을까? 필자는 말할 것도 없이 전자에 한 표를 보낸다. 독일 작가 안톤 슈낙이 쓴 에세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보듯 인간의 가슴을 아리하게 하는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 쪽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初秋)의 陽光(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이를테면 비 내리는 잿빛 밤, 그리운 소중한 사랑하는 이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져갈 때. 그러고 나면 몇 주일이고 당신은 다시 홀로 있게 될 때. (중략) 몇 해고 몇 해고 지난 후, 문득 돌아가신 아버님의 편지가 떠오를 때.'

일상의 고됨에 슬픔이 있다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과 기쁨을 찾아 참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은 누구나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슬픔에 빠진 사람이나,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나 각자는 치열한 나날을 살아간다. 하루 하루 그런 순간들을 맞이하면 슬픔에 빠지기도 하지만 많은 일을 이겨낸 자신을 대견하게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그런 마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는 매 순간 삶을 포기하기보다 끝까지 내 삶을 사랑 했구나'라며 자신의 노고(勞苦)에 과장이나 사사로움 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그런 마음이 우리들의 기쁨일 것이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도 슬프게 하는 것들과 대비하면 무수히 많다.

세상의 태동을 알리며 우는 아기를 볼 때, 무럭무럭 커가는 아이들을 볼 때, 학교를 다니며 잘 한다고 칭찬(稱讚)을 받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맛있는 식사를 할 때, 나무 그늘 아래에서 시원한 수박을 먹을 때, 숲 속을 거닐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상쾌한 향기를 느낄 때,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할 때 우리들은 기쁨에 취한다.

안근찬이란 소설가가 쓴 '사랑이란 이름으로 영원히 당신과 함께하고 싶습니다'란 시랄까 엣세이 '기쁨과 슬픔'에 '기쁨이란 슬픔 위에 덧칠하는 것입니다. 슬픔이란 기쁨의 옷을 잠시 벗어 두는 것입니다. 웃음과 눈물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슬픔이 없으면 기쁨의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슬픔은 기쁨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슬픔이 깊으면 기쁨도 커지는 법입니다. 기쁠 때는 슬플 때를 기억하십시오. 슬플 때는 다가올 기쁨을 상상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느끼는 슬픔은 기쁨의 다른 한 면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슬픔은 기쁨을 위해 있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열정적으로 살아가 노후에 기쁨의 나날이 훨씬 많을 것이다. 반면 슬픔에 허우적거리며 비관에 빠진 부정적 삶에는 쓸쓸한 노년이 찾아들 것이다. 앞으로 당신과 나의 삶에 기쁨이 많은 노후(老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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