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호
부국장·사회부장
충북은 예전부터 색깔이 없다는 평을 곧잘 들어왔다. 주민 기질도 모 난데 없고, 튀지 않는다. 맺고 끝는 맛이 없어 저 경상도나 전라도 사람들한테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다. "너희들은 왜 그렇게 미적지근하냐"는 타박이다. 같은 충청도이면서 대전, 충남에 비해 더 미온적이라는 평가다.

그래서 그런지 충북은 시범지역으로 많이 활용됐다. 찬성과 반대가 명확치 않은 어중간한 처세를 하다보니 새로운 정책, 신제도를 도입할 때 우선 찾는 지역이 됐다. 일부 반대 목소리가 있어도 그게 그리 크지 않으니 위정자들에게는 더 없이 만만한 존재였던 것 같다.

그런데 좀 변했다. 이제는 더 이상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입장에서 벗어나 분명한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최근 여러 선거에서 영·호남이 여전히 패가 갈려 특정 정당에 몰표를 던지고 있지만 충북의 표심은 종종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정작 투표한 사람들도 깜짝 놀라는 민심을 드러냈는데 한나라당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전체 8석 중 6석이 민주당에게 돌아갔다. 이웃 충남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자유선진당 바람도 이곳에서는 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당 관계자들조차 "선거에서 이기려면 충북을 잡아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여론을 읽는 척도가 곧 충북"이라는 싫지 않은 평가도 받고 있다.

예전에는 요란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도 내지 않는 채 남들이 가는 길만 가는 조용한 지역, 소극적인 사람들에서 이제는 자기 주장을 분명히 밝히고, 할 말은 하는 충북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한마디로 '튀는 충북'이 됐다.

이 '튀는 충북'에서 전국 처음으로 민감한 사안이 터져 지역민들이 찬·반으로 나뉘어졌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표지석을 청주상당공원이라는 특정 장소에 설치해햐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 옥신각신 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아직 다른 지역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설치를 추진하는 추모시민위원회는 "노 전 대통령 장례 기간 동안 보여준 시민들의 애도 열기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상당공원에 조그만 추모 표지석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이고, 이를 처리해야 할 청주시는 "아무리 뜻이 그렇더라도 공공장소에 특정인의 표지석을 세우는 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 25일 추모시민위원회가 표지석 설치 계획을 처음 발표한 이후 청주시가 최종 불허 입장을 밝힌 7월 21일까지 근 한 달 동안 밀고 당기는 지루한 싸움이 이어져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왜 하필 우리 지역에서 표지석 설치 여부를 놓고 주민들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하느냐"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를 진보와 보수 간 대립으로 보는 몇몇은 "이젠 남(南)·남(南)갈등도 우리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치러야 하느냐"는 볼 멘 소리까지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찬성·반대를 떠나 다른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현안을 놓고 서로 언성을 높이는데 대한 안쓰러움의 표현이었다.

아무리 '튀는 충북'이지만 이제는 이 문제를 정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공공의 장소에 특정인의 추모 표지석을 세우는 건 무리다. 자칫 고인을 기린다는 좋은 뜻이 '그들만의 표지석'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굳이 지역에 표지석을 세우려면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청남대가 어떻겠느냐는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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