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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와 내리사랑
김정렬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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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7.28  15: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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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렬
수필가

동물원 입구 야트막한 언덕배기를 오르는데도 숨이 차다. 어느새 중복도 지나니 더위는 막바지에 치달으며 여름의 정열을 소진하려는 것 같다. 장마비가 며칠째 쏟아 붓더니 오늘은 반짝 든 햇살이 타오르듯 눈가에부서진다.

올 여름내 덥다는 이유로 가족나들이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휴일은발목을 잡는 집안일들을 평일에 앞당겨서 부지런히 해놓고 나선 길이다.

남편과 아이가 닭장 쪽으로 향한다. 나는 나무 아래 벤치에 걸터앉아 잠시 더위를 피해 그들의 거동을 바라본다. 닭을 쫒아 다니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의 모습에서 문득 어린 시절 오리를 몰고 다니던 내 모습이 겹쳐진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다. 시골집엔 오리 이백여 마리를 키웠다. 면내에서도 유지집안이라 통할 만큼 전답이 많았다.

소, 돼지, 염소 등 짐승 풀 뜯기는 일이 내 몫이었다. 하루 종일 시냇가에 풀어 놓은 오리 이백여 마리를 해거름이 되면 오리장으로 모두 몰아넣어야 했다.

오리알을 줍는 일도 나 아니면 일손이 따로 없었다. 사남매 중, 막내인 나 혼자만이 아직 부모 품에 있어서였다. 나는 오리엄마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악착같이 집안일을 거들었다. 그러니 잠자리에 들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런 막내딸이 어머니에게는 몹시 안쓰러웠다고 한다.

오리들은 언제나 장난기가 발동한 어린아이처럼 천방지축 뒤뚱거리며 돌아다녔다. 삼백여 미터 공간의 개울가였다. 온몸에 물을 튀기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오리들을 정렬시키려 해도 당최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오리와 함께 뒹군 것도 헤아릴 수 없다. 둘이 양쪽에서 몰아대면 좀 나을 듯 싶었지만, 혼자서 뛰다보면 오리나 내 모습이나 다를 게 없었다.

물가에 낳아 놓은 알들은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기도 하고, 더러는 오리들이 몰려다니다 깨뜨린 것도 있었다. 집이 멀기 때문에 두 번 걸음 할 수가 없었다. 주운 오리알을 어깨에 짊어지고 오리 뒤를 쫒았다.

운동회만 되면 까만 팬티에 흰 메리아스를 입고 계주선수로 뛰는 손녀딸에게 할머니는 노랗게 울궈진 감과 삶은 오리알을 단골메뉴로 싸가지고 오셨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6년 동안 한 번도 운동회를 구경하지 못하셨다. 달리기나 윗몸일으키기는 단연코 일등을 거머쥐었던 터지만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응원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운동회 때도 할머니께서는 고무신을 하얗게 닦아 신고 먼저 나서시며 어머니께 마당에 널어놓은 깨를 털어 놓으라 하셨다.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손주들에게 끔찍한 사랑을 베푸시던 할머니로 인해 어머니 자리는 항상 뒷전이었다.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살얼음을 걷듯 숨 막히게 했다. 찬 서리보다도 냉랭한 시집살이는 좀체 삭지 않고 밤에도 잠들 때까지 할머니 곁을 지켰다. 안방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어머니 무릎엔 항상 기워야할 양말이며 한복동정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할머니 젖가슴에 파고 든 채 누워 곁에서 바느질 하시는 어머니를 올려다 보면 불쌍해 보이는 어머니 때문에 울컥 속이 상했다. 어머니 무릎의 바느질 통을 당장 치우고 담쏙 안겨버리고 싶었다.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는 그것도 어머니가 행여 트집잡힐 일이겠다 싶어 꼼지락 꼼지락 손만 내밀어 어머니 손등에 살짝 대어보곤 했다. 동물원에서 닭을 쫒느라 한바탕 신바람이 난 아이를 보며 나는 덩달아 행복함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자식들에게 주고 싶었던 끝없는 사랑과 행복을 마음껏 쏟아보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항상 가슴앓이 하셨을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음이 늘 이처럼 울렁거리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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