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순희
수필가

신문사 원고 청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7년 전, 헤어진 지 15년 뒤쯤 만난, 읍 소재 j여고 제자와 이 말 저 말을 주고받는 중에 듣게 된 한 마디, 신문을 볼 때마다 선생님이 쓰신 글이 있을 것 같아서 찾는다고 했다. 매번 실망했을 제자에게 미안했고, 갚아야 될 빚처럼 그 말이 마음에 남아 있다.
그 제자는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었을까. 여러 번, '종례 후 밖에 나가 나쁜 짓(?)을 해야지.' 계획해 놓았지만 막상 밖에 나가면 선생님 얼굴이 떠올라, '그러면 안 돼!' 하며 곁길로 가지 않았다고, 남 얘기하듯 가볍게 이야기하던 그 제자는 지금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을까.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도록 한 자리에서 남편과 함께 문구점을 경영하고 있는 그 제자는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신이 나고 힘이 날까.
사실은 그 제자의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내가 신이 나고 힘이 난다. 세상과 손잡지 않고 올곧게 사느라 경제는 넉넉지 않으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오순도순 사는 모습이 대견하고 훌륭하다. '선생님이라면 이럴 때 이렇게 하셨을 거야'하며 살아왔다는 독백이 아니더라도 그 제자의 믿음직하고 지혜로운 말이 듣고 싶어 근처를 지날 때면 문구점을 기웃거린다. 나는 요즘 '말하기'를 연습중이다. 말을 아껴서 천금보다 값지게 사용하고 싶다. 입만 벌리면 튀어나오는 자랑하는 말을 줄이고 싶다. 남의 말을 들으며 판단하는 속엣말을 잠재우고 싶다. 모든 생명의 존귀함을 기억하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싶다. 언제나 긍정적인 말로 표현하고 싶다. 왜냐하면 말이 우리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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