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재 청주ymca 홍보출판위원

봉명동 터줏대감이 돼 가고 있다. 도시계획에 의해 마을이 형성된지 22년. 촌 동네가 되었지만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서정적인 정서를 지니고 있다. 대형마트나 네온사인이 없어 화려하지 않지만, 4차원의 미로 속을 헤매며 동·호 수를 찾지 않아도 되니 좋다. 같은 라인에 사는 노인들은 공터에 채소를 가꾼다. 흙이 있으면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신념이 그들을 공터로 안내한다.
요즘 우리집 정원엔 호박, 가지, 고추가 담을 넘어와 앉아있다. 호박잎, 옥수수가 아침이슬을 머금은 채 웃고 있다. 대수롭지 않은 걸 초인종 누르고 주기에 좀 뭐 하다 여겨 그러시는지 채소는 날마다 담을 넘는다.
내가 어릴 때 옆집과의 소통은 울타리였다. 찔레꽃, 개나리, 탱자나무로 된 울타리엔개구멍이 나있었다. 그곳으로 고구마, 떡, 육개장, 복숭아가 넘나들었다. 인정이 넘어왔고 사랑이 넘어갔었다. 많은 집과 나누어 먹을 만큼 음식이 넉넉하지 않아서여러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옆집과 나누어 먹는 지혜였다.
채소가 담을 넘어온 날 내 집에선 식용유, 통조림, 비누 등이 담을 넘어간다. 나는 열쇠가 없을 땐 옆집으로 들어가 담을 넘어 내 집으로 들어온다. 옆집할머니 대문 열쇠가 없을 땐 내가 내 집 담을 넘어 대문을 따드리기도 한다.이따금 그릇 깨지는 소리에 잠 못 이루고, 부가가치 없는 경제에 조바심도 일지만 나의 담 넘는 일은 계속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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