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섭팀장

학부모들의 허리가 휘다 못해 끊어질 지경이다. 가계가 아무리 궁핍해져도 아이들 교육비만큼은 절대 손대지 않는 게 우리 학부모들이다. 대한민국처럼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높거나, 그 자신들이 교육전문가가 된 나라도 없다고 한다. 자녀에 대한 관심이 도를 넘어 '죽기 살기' 식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백일·돌만 지나면 '고생'이 시작된다. 놀이방에서 어린이집, 유치원 등 학교 입학 전부터 공동생활이 시작되고 초등학생만 되면 학교 수업이 끝나면 더 바빠진다. 영어·수학은 기본이고 예·체능까지 여러 개의 학원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즈음이면 '파김치'가 된다. 때가 한참 지난 뒤 겨우 저녁을 먹고 나서는 놀거나 피곤이 겹친 눈을 붙이고 싶지만 부모의 눈치를 보며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한다. 숨 막힐 정도로 꽉 짜여진 이런 일정이 매일 반복된다.

방학을 맞았어도 영 달갑지 않은 게 당연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행복 끝, 고생 시작'이라는 말이 유행되고 있을 정도라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학교를 마치면 가방 집어 던지고 뛰어 놀다가 해질녘이나 돼서야 집에 돌아와 밥 먹고 이내 골아 떨어지던 아이들의 모습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얼마 전 선배로부터 들은 한탄(恨歎)이 좀처럼 잊혀지질 않는다. 그 선배는 남보다 한참 늦게 얻은 금쪽같은 자식이 어릴 때부터 공부에 찌드는 게 안타까웠다. 아내와 다투면서까지 학원에 보내지 않았고, 학교 공부만은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뒀다. 이후 밝아진 아이의 표정에 흐뭇하기만 했고, 그저 '튼튼하게만 자라달라'는 마음으로 몇 년을 보냈다. 그러나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큰 문제가 생겼다. 아이가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됐고, 바로 잡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교육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대가치고는 너무도 잔인했다. 자칫 아이의 장래를 망치지나 않았을 까 하는 자책감에 밤잠 설치는 일이 계속됐다. 한 때 이민(移民)까지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여건상 포기했다. 결국 다른 아이들보다 강도 높은 학원 수업과 과외를 선택했다.

백방으로 알아봐도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그 선배는 좋아하던 술도 끊었고, 해 지기 전 집으로 향한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우리 교육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못해 안타깝다.

정부가 교육을 바로 잡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얼마 전 충북 괴산고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학생·학부모, 학교 관계자들에게 약속도 했다. 이 대통령은 "과외 받고, 성적 좋은 사람만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인정받는 시대는 마감하겠다"며 "과외 많이 해서 성적 좋은 학생들이 좋은 대학교 가는 시대를 끝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전교조의 즉각적인 반박도 그렇고, 최근 실시된 취업에 따른 대학생들의 사교육비가 평균 1인당 연간 256만 원이라는 조사 결과도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사교육이 '대학 진학용'을 넘어 '취업용'으로까지 활용되는 것이다. 수십∼수백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치열한 취업난 속에서 '취업용 사교육'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런 경쟁 체제를 해소하지 않는 한 임기응변 식 대책만으로는 사교육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물론 이상(理想)이겠지만 학력·학벌의 차별이 없는 사회,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우선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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