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점' 달하면 질적 변화

받아 놓은 날은 어김없이 온다고 했던가. 한 달 여 남겨놓고 국가고시인 직업상담사 시험에 도전하던 이들에게도 어김없이 시험일은 닥쳤다. 두뇌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초콜릿을 사들고 시험 장소에 미리 갔다. 긴장한 얼굴에서 적당한 스트레스를 읽는다. 만나기만 하면 일상의 수다를 늘어놓느라고 시간가는 줄 모르던 사람들이 초콜릿 받으며 눈은 벌써 계단으로 향한다. 삼십분이 평생을 좌우한다며 나르듯이 계단을 올라 시험장소로 향하는 그녀들의 열정에 미소가 배어 나온다. 며칠 전에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시험을 포기하고 싶다고 울먹이던 이 선생님 얼굴이 무척 밝다. 어제는 기출문제 90점을 받았단다. 합격선에 올라왔다는 안도감이 자신감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the last straw that broke camel's back)라는 영어의 관용어가 있다. 지푸라기 하나의 무게야 사소하겠지만 낙타의 등에 그 지푸라기를 싣고 또 싣고 계속 싣다보면 아무리 튼튼한 낙타일지라도 결국은 무릎을 꿇거나 등뼈가 부러지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무엇인가 쌓이고 쌓이다가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지점이 생기는데 그것이 '임계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임계점이 도달하기 전까지는 질적인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망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공부나 인생의 여러 가지 도전도 그러하다. 노력하는 만큼 그날의 성과가 선명하게 그림으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희망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지혜는 경험에 있다고 본다. 여름이 가고나면 가을이 온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안다. 그것은 선행 학습을 통해 불변의 진리로 우리 뇌리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합격하고 싶은 간절한 열망으로 시험을 본 그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문제 앞에서 그들이 덜 중요한 문제로 흘려보낸 시간을 아쉬워했을 것이다. 아니면 충분히 준비한 덕분에 반가운 문제들을 풀어가느라 마음이 바쁠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상황은 그들이 보낸 시간이 빚어낸 결과라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잡념 없이 오로지 시험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몰입의 시간 또한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물을 먹어가며 수상스키를 배울 때, 물살을 가르며 멋진 모습으로 수상스키를 타는 사람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하루만 배워도 물위에 서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종일토록 연습하고 나서 마지막에 한 번도 쓰러지지 않고 기적처럼 호수를 한 바퀴 돌았을 때, 포기하지 않은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적이 있다. 자전거를 배운 사람은 언제든지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듯이 내 몸에 익힌 경험들은 무의식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가도 내가 급히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알라딘 램프'의 '지니'처럼 주인인 내게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하여 보고 잊어버리고 또 보고 잊어버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시험을 보는 이들의 무의식 창고에 들어 있는 모든 지식이 화들짝 깨어 의식에 떠올라 답안을 써 내려가길바랐다. 시험을 마치고 내려와 밝은 목소리로 깔깔대는 그녀들의 합격을 기원한다.

▲ 유인순
천안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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