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철
청주대 교수

학생들이 고대하던 방학이 시작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초등학생에게 방학이라 참 좋겠다고 물으니 말만 방학이지 학교 나가기 때문에 별로란다. 내가 요즘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견뎌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요즘 학생들은 철인에 가까울 정도로 이 것 저 것을 통해 단련한다. 그런다고 어느 학원에 걸린 현수막 문안처럼 보통 학생이 천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어른들의 욕심과 조바심에 학생들은 방학에도 학교로 학원으로 내몰리고 동심은 멍 들 뿐이다.

방학은 학생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소 하지 못했던 경험을 함으로써 다른 세상을 접하고, 새롭게 마음의 문을 열어 희망을 틔우고 성숙해질 수 있는 그런 방학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면에서 방학 동안 세계 유명 화가들의 전시회나 공연들이 개최되는 건 참 반가운 일이다. 유명 언론사 등에서 주최하여 방학에 맞춰 개최하는 해외의 유명 미술가 전시나 캐릭터전, 그림책 원화전 등은 규모와 명성에서 관심을 끌기에 손색이 없다. 특히 미술 교과서에 실린 해외 작가들의 작품인 경우는 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문화체험 과제를 수행하는데 제격이다.

그런데 이런 전시나 공연들이 내실보다 장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안타깝다. 방학 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체험을 제공한다는 명분 아래 이윤을 취하려는 경쟁이 뜨겁다. 매년 방학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쉽게 볼 수 없던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국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기회인 것이 틀림 없다. 그런데 딱 그것뿐이다. 정말 좋은 작품들을 보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전시장에 가보면 거창한 홍보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이미 잘 알려진 대표작은 볼 수 없는반면 관람객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그만큼의 쾌적한 공간이 확보되어야 함을 주최 측에서 모를 리 없다. 그런데 현실은 대목이라도 맞은 듯 밀려드는 관람객을 전시장 안으로 밀어 넣기만 한다. 관람객이 많으면 많을수록 전시장 안의 면적과 작품수를 고려해서 관람객수를 조절하고 순환시켜야 한다. 이것은 주최 측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며 좋은 작품을 여유를 가지고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은 의무다.

전시장을 찾은 학생들과 부모들의 행태도 때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때와 장소에 따른 예의범절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작품을 감상 중이면 그 앞으로 지나가는 것은 큰 결례이다. 또한 전시장 안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뛰어다니는 것 등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학생 단체관람인 경우는 물론 가족 단위 관람객들조차 소란스러움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 성적 지상주의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공공장소에선 어떠한 처신을 해야 하는지 먼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학생들이나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뛰어다녀도 적극적으로 제지하거나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보호자는 의외로 적다. 주최 측에서 고용한 아르바이트생들 몇몇이 주의를 주지만 그게 전부다.

세계적 명화를 국내에 들여와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화예술이 미래의 경쟁력을 담보로 한다는 말이 공감을 얻는 요즈음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작품들을 보며 감성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이런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은 권장할 만하다.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예술 체험 산업이 돈벌이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명화 감상에 앞서 더 수준 높은 준비가 선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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