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는 2천년의 기원전역사와 2천년의 기원후 역사로 크게 나누어 볼 수가 있다. 기원전 역사는 고조선과 삼한을 비롯하여 수 십 개의 나라가 분립되어 있던 이른바 열국시대라 할 수 있다.

그다음 기원후 2천년의 역사는 왕조사로 1천년과 오백년 단위의 기나긴 역사를 지켜왔다. 사실 한국인처럼 생명력이 강한나라도 드물다.

특히 힘으로 침략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하거나 정신적으로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대단한 수치로 받아들이고 반드시 복수한다는 마음으로 세차게 도전하여 나라를 발전시키는 정신적 원동력으로 승화시켰다.

거란이 고구려의 후예인 발해를 멸망시킨 원한이 고려 초기 발전의 자극제가 되고 몽고로부터 받은 수치를 씻으려는 자기분발이 조선왕조의 개창으로 연결되었으며 왜란과 호란의 복수심이 조선후기 왕조중흥의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2차대전 후의 한국의 발전도 일제강점에 대한 설욕의 심리가 저변에 있었다. 우리 배달민족은 외침을 받을수록 한국인의 자존심은 더욱 커졌고 그 자존심은 자기의 전통에 대한 애정과 동시에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기혁신을 낳았다.

한국의 호국정신은 주체와 개방의 결합이요 민족과 세계의 만남이요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이다. 1천 년간 고려와 조선왕조가 대규모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장기집권을 누릴 수 있었던 데는 한 가지 중요한 특성이 있다.

새 왕조가 세워질 때마다 옛날의 영광을 부활시키고 계승하는 국호가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첫째, 고려가 고구려의 영광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고려라는 국호를 정했다.

둘째, 조선은 고조선시대의 영광을 계승한다는 생각에서 조선이라 하였으며 1896년 탄생한 대한제국도 삼한의 영광을 계승한다는 정신이 배어있다.

이와 같이 한국인의 전통과 역사계승의식은 은근과 근기로 대변되는 끈질긴 생명력과 간단없는 호국정신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한국인의 역사는 끈질긴 생명력의 기록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세를 위하여 지었다는 훈요십조나 최승로가 성종에게 건의한 시무상소에는 우리가 지켜야할 문화정책으로서 중국의 선진문물을 선별해서 받아들일 것을 강조하였으며 조선후기 학자들은 국학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전통에 대하여 자신감을 일깨워주었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은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생활철학으로 국가수호와 민족국가 발전과 배달민족으로서 문화전통 수호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살아온 자랑스런 한국인이었다.

우리의 전통 문화 역시 민족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외세의 침략과 수탈 속에 없어질 듯 하면서도 끝내 없어지지 않고 명맥을 이어 온 것 처럼 말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역사에 대한 기록을 중요성을 선조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지 우리 문화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삼국시대의 기록은 역사 뿐만 아닌 전부분에 걸쳐 거의 남겨지지 않아 현 시대에 문화재와 당시 시대상을 복원·계승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빚고 있다.

조만간 아이들이 여름 방학을 맞는다. 충청남도 곳곳에는 많은 문화재와 박물관이 산재해 있다. 공주·부여만 하더라도 충남역사박물관, 백제역사재현단지 등이 있어 우리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백제 문화를 보고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시설 들이 가까이 하고 있다.

이 시설들은 굳이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을 가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근본이 되고 있는 백제문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이런 작은 일들에서 부터 조상들이 그동안 이어왔던 끈질긴 민족의 생명력과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명맥을 지켜온 우리 문화를 후대에 알릴 수 있는 첩도가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