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순희
수필가

놀빛이 아직 살아 있는 저물녘, 서점을 향해 걷는 길이었다.

집 앞 버스 정류장 의자 곁에 비둘기 세 마리가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바닥을 쪼고 있다. 뭘 하나 눈여겨보니 말라죽은 지렁이를 뾰족한 부리 끝으로 '콕콕콕' 쪼고 있다. 부리질이 빨라질수록 보도블럭이 깨끗해져간다. 지렁이가 징그럽다는 생각에 앞서 '저렇게 해서 땅이 깨끗해지는 거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비둘기에게 이제껏 한번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산 것은 잘못이었다'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번잡한 상가지역을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50%세일'이라는 문구에 이끌려 옷가게 문을 밀었다. 이 옷 저 옷 들추고 만지고 하다가 돌아서서 문을 밀고 나올 때 '살 마음도 없이 이곳에 들어와 시간을 보내고 나가는 것은 잘못이었다'라는 후회가 머리를 들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네거리 신호등 곁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정신없이 핥고 있다. 무얼 저렇게 맛있게 먹을까 궁금해 하며 고개를 늘이니 누구가가 토해 놓은 오물이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이 깨끗해지는 거구나!' 사람을 경계하는 듯한 고양이를 나도 경계하는 눈빛으로만 쳐다보고 산 것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황혼녘을 지나면서 발견하는 '잘못'들을 어찌할까. 잘못인 줄 모르고 잘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잘못들을 제대로 깨닫기나 하게 될까. 월말고사 준비로 후끈거리는 중1 교실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펴놓고 답을 찾으며 읽던 순간이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있는데, 오늘 문득 답이 보인다.

'인생은 잘못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