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기에 유건을 쓰신 할아버지가 생소했나보다. 차례 상 앞에서 아들아이가 소리쳤다

"우-와 오천 원 할아버지다"

아직도 옛 전통을 고집하고 있는 시댁이니 제사나 명절 때 늘 봤을 텐데, 오늘따라 오천 원이라니. 오천 원 권 지폐에 율곡 이이 선생이 쓴 정자관(程子冠)과 할아버지의 유건이 비슷해서이리라. 차례 상을 물리고 아이들은 신기한지 유건을 서로 머리에 써 보느라 난리다. 우리나라 지폐에는 관모를 쓴 이씨(李氏) 성(姓)의 조선시대 세분의 인물초상이 있고 모두가 남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1962년 모자상이 나온 이래 45년 만에 여성이 등장했다. 한복을 입고 머릿결 곱게 빗어 쪽을 올린 채. 앞면에는 신사임당과 묵포도圖와 초충도수병이, 뒷면에는 조선중기화가 어몽룡의 월매도, 이정의 풍족도가 자리 잡고 있다.

엄마라고 다 엄마가 아니고, 아내라고 다 아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현모양처 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다. 공부는 노력하면 올라갈 것이고 환경이야 돈만 있으면 어느 정도 좋게 할 수 있지만, 사람을 키우는 것은 교과서로도 안 되고 참고서로도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아이가 새로 나온 돈 구경하잖다. 한국은행에서 발행된 오만 원 권이 돌고 돌아 내게 한 장이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나름대로 지갑에도 지폐를 놓는 순서가 있어서 만 원이라고 맨 끝을 꺼내면 오만원이어서 다시 바꾸기도 한다. 오만원의 신사임당이 오천 원 권 율곡 이이 선생의 어머니라고 알려주었다. "그럼 오만원이 오천 원의 엄마야? 근데, 왜 엄마가 더 젊어."

아들의 말에 한참을 웃었다.

▲ 모임득
수필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