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 엄앵란이 신랑, 각시가 되던 해에 중학생이 되었다. 쉬는 시간의 주 화제였고, 내겐 이름조차 생소했던 그들 이야기로 시끌벅적한 교실의 소음이 날 도서관으로 밀어냈다.학교 도서관에 사서교사가 상주하고 있어서 쉬는 시간에도 출입이 가능했다.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최초의 현대소설이라고 배운 이광수의 '무정'을 골랐다. 두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했다. 배경이 묘사되는 발단 부분을 읽으며 소설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남이 상상해 낸 이야기를 굳이 읽을 필요가 있나, 내가 상상하면 되지 하는 좁은 소견에서였다.
'위인전'을 읽기로 했다. 거기에는 훌륭한 삶의 모습들이 들어 있고, '어떻게 살아야 되나'에 대한 답이 있을 것 같았다.슈바이처, 퀴리부인, 안창호, 플루타르크 영웅전 등 눈에 띄는 대로 읽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도서관에서 교실로 향하던 중, 위인들의 공통점이 깨달아졌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비범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능력과 노력의 열매로 남들을 살렸다. '인생은 남을 위해 사는 것'이었다.
교실에 앉아 생각하니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었다. 수업 시간을 기다렸다. 나중에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미래를 꿈 꾸며…. 황무지의 마른 풀 같은 내게 '공부'는 '푸르른 꿈'이었고 '유일한 희망'이었다.
"엄마, 공부는 왜 하는 거야?"라고 질문하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얼굴이 조금은 밝아질까.

▲ 박순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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