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솥뚜껑을 여는 순간 김이 확 피어오르면서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 보리밥이기는 하지만 아침에 삶아 놓았던 보리쌀이어서 푹 퍼진 것이 쌀밥 못지않게 먹음직스럽다. "상규야, 해룡네에 얼릉 가서 즈녁 다 됐다고 아부지 뫼셔오니라."

정지와 안방 사이에는 숭늉그릇이 드나 들 정도의 작은 미닫이창이 있다. 상규네는 미닫이창을 열고 안방 안을 살펴본다. 방에 있을 줄 알았던 상규는 없고 일곱 살짜리 인자가 막내둥이 인숙이를 돌보고 있다.

"응."

상규네는 인자가 제 상체크기 만한 인숙이를 등에 업고 나가는 모습을 흘낏 바라보며 밥을 푸기 시작했다. 시아버지와 박태수의 밥은 고봉으로 푼다. 열 살인 진규와 열세 살인 상규의 밥도 박태수 못지않게 수북이 담았다. 시어머니와 인자는 주걱으로 다독거려 밥을 푼다. 자신이 먹을 밥은 나물을 무칠 때 사용하는 양푼에다 바닥을 박박 긁어서 담았다. 박평래의 방은 등잔불이 켜져 있다. 아직 초저녁이라서 창호지 문으로 투영되는 불빛이 희미하다.

"애비가 장에 갔다가 하도 싸뵈길래 한 손 사왔대유."

상규네는 우선 밥상을 뜰팡에 올려놓았다. 방문을 열어 놓은 다음에 밥상을 방 안에 들여놓았다. 밥상을 방 가운데로 들고 가던 청산댁이 이게 웬 고등어냐는 표정으로 상규네를 바라본다. 상규네는 마음속에 있는 말은 하지 못하고 뒷걸음을 쳤다.

"생고등어라믄 무수 놓고 꼬치장 살살 풀어서 찌지는 거이 좋지만, 자반고등어는 적쇠에다 자글자글 꾸는 것이 맛있는 벱인데……"

"니덜이나 먹지 않구선. 우린 나물 한 가지만 있어도 족한디……"

박평래가 수저를 들다말고 마땅치 않다는 표정으로 청산댁을 흘겨본다.

"다 드시고 나서 소리 하셔유."

상규네는 박평래와 청산댁이 하는 말을 못들은 척 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았다.

박태수가 기분 좋은 얼굴로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뒤에 따라오는 인자는 두 손으로는 등에 업혀 있는 인숙이를 받치고 입으로는 오징어 다리를 질걸질겅 씹고 있다. "이기 먼 냄새여. 우리 집에서도 생선 비린내가 풍길때도 있구먼."

박태수는 상규네가 우거지상을 하고 있든 말든 기분 좋은 표정으로 정지에 들어간다. 밥상을 불끈 들고 나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상규야! 진규 데리고 와서 어여 즈녁 먹어라. 누굴 닮아 처먹은 자식새끼들이라 저 지랄로 크는 지 모르겄어. 때가 되도 밥 처먹을 생각도 안하고 노는데 증신이 읎으니 워티게 살겄어. 공부를 저만큼 하라고 하믄 애미를 아주 때려 쥑일듯이 뎀벼 들겄지."

둥구나무 밑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깔깔깔! 철용이 니가 또 술래여. 하는 상규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려왔다. 상규네는 인자가 업고 있는 인숙이를 받으며 박태수를 노려본다.

좁은 방안에 온 식구가 밥상을 가운데 두고 방안이 가득 차도록 둘러앉았다. 상규네는 고등어찌개 냄비 속에 있는 고등어 대가리를 떠서 박태수의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자식들에게는 무 한 토막 씩를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 상규를 비롯해서 진규 인자는 당연한 표정으로 수저를 든다. 자신은 고등어찌개를 바라보지도 않고 호박잎에 밥을 쌌다. 된장을 처발라서 뚤뚤 말아서 입안에 처 놓고 우걱우걱 씹으며 인숙이에게 먹여줄 밥을 물에 말기 시작했다.

"왜 대가리 뿐여?"

"면서기나 농협조합 서기들이 즘심 때를 맞춰서 집에 들이닥치믄 비린내 나는 겅거니라도 한 가지 있어야 하잖유…." "잘난 고등어 한 손 을매나 한다고, 이거 당신이나 먹어. 난 국물에다 비벼 먹을팅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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