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격적인 모습으로 타계한 지 불과 3개월만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타계했다. 언론이나 정부기관에서는 '서거'라는 이름으로 이분들의 죽음을 높이며 국민장 또는 국장으로 예우를 다했다. 많은 국민들이 나라의 큰 지도자를 잃은 것에 대해 슬퍼하며 안타까워 한다. 참 애석한 일이다. 오래 사셔서 국민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교훈도 베풀며 나라의 앞날을 같이 걱정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한 분은 잘못된 정치상황이, 한 분은 하나님이 정하신 섭리에 따라 우리와 작별하게 하니, 짧은 기간 안에 두 분 정치지도자를 보낸 국민의 마음은 허허롭기만 하다.

그런데 이렇게 커다란 지도자들을 떠나보내면서 보인 언론이나 정부의 태도에 불만이 있다. 한 마디로 일관성이 없다는 느낌이다.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날 그의 죽음에 대한 중앙언론의 보도는 한 두 시간 사이로 180도 변했다. 아침까지도 앞뒤가 다른 천하의 파렴치범처럼 아주 사소한 것까지 시시콜콜 보도하며 직전 대통령을 코너로 몰고 가던 언론이, 그리고 죽음을 보도하면서 '자살' 운운하며 고인의 사진 중 가장 보기흉한 모습을 내보내던 방송이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서거' 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장례식날까지 찬양일변도로 바뀌어 국민들의 누선(淚腺)을 자극했던 것이다.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도 마찬가지다. 불과 몇일 전 까지도 현실정치에 개입하여 왈가왈부하는 그의 태도를 놓고 비난하던 이들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입을 다물고, 찬양일색으로 그의 삶을 반추한다. 정부도 화해와 통합을 내세우며 유례없는 국장으로 격을 높이고, 국립현충원에 자리가 없다더니 자리를 마련해서 안장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고인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지, 아니면 평소의 너무 지나쳤던 행위에 대한 반성의 표현인지, 아니면 향후의 정치적 표를 계산해서 한 것인지 의아하다. 그러나 예의라면 평소에도 지켜야 할 것이고, 평가라면 평소에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해야 할 것이며, 정치적인 배려 또한 평소에 잘 해야 할 일이다. 그 때 그때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 일관성을 유지하되, 그렇지 못할 경우라면 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나의 생각도 일관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그 분을 그다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권력의 화신, 자기목표 달성을 위해 수없는 말 번복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던 정치인, 동서간의 지역갈등을 고착화시킨 장본인 정도로 생각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고인의 국장과정을 지켜보면서 70년대 박정희 독재의 암울한 시대를 거치며 수없이 죽을 고비를 맞으면서도 '행동하는 양심으로' 나라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일이나, 남북한 대화의 물꼬를 텄던 일이나, imf 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던 일 등 우리 현대사에서 큰 역할을 한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4차례 죽을 고비, 2차례 망명길, 55차례의 가택 연금, 6년여의 옥고' 등이 그의 삶이 곧 우리 현대정치사였음을 웅변한다. 쉬지 않는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가꾸어 온 끝없는 자기발전 모습, 목표설정의 정당성을 떠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버리지 않았던 무서운 집념, 그리고 병석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될 때 까지 계속 썼던 일기장은, 그 자체로서 얼마나 존경스러운 일인가.

누구의 삶에든 공과(功過)가 있다. 누가 흠없는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졸지에 나라의 큰 정치지도자를 떠나보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길 없지만, 뒤에 남은 우리 후배들은 그분들의 삶 속에서 배우고 이어갈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는 객관적이고 냉철한 평가와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지워진 시대의 짐을 지고 나아가야 할 일이다.

▲ 유재풍
청주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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