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벗어난 대출제도

2010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70여 일 남았다. 내 아이는 밤낮과 휴일의 구분 없는 반복적인 공부에 지치고 부모인 나는 매년 천정부지로 오르는 등록금 걱정에 미리 지친다.

지난 7월 30일에 정부는 내년부터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제도(icl)'를도입한다고 밝혔다. 이는 연간 1000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부담해야 하는 대학생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취지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대학교육협의회가 마련한 간담회에서 '대학생들이 이제 등록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며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등록금이 없어서 학업을 포기하거나 반복되는 대출금에 대한 이자의 상환 부담이 큰 학생들에게는 다소간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 만, 물가 인상률의 2~3배가 넘는 등록금 인상에 대한 대책이 빠진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대학생 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대출한도를 4000만 원에서 무제한으로 높인 이유는 등록금 인상의 자유를 주는 꼴인 셈이다.

현재 등록금의 핵심적 문제는 매년 초고액으로 오른다는 것이다. 경기대의 10% 인상을 시작으로 2010년 등록금의 폭등은 이미 예고된다. 그런데도 등록금의 인상에 대한 대책은 언급도 하지 않고 아무런 규제도 없이 오히려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공부에만 전념하라고 하니 나중에 상환해야 할 대출금은 누가 갚아줄 것인가.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제도'는 본질적으로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교육비를 대출이라는 형식으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하는 대출제도일 뿐이다. 현재의 체납과 신용불량은 막아주면서 일단 학교는 다니고 나중에 내면 된다는 식으로 반발을 최소화하고 등록금 인상을 합리화시켜주자는 정부의 취지를 우리 국민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딱하게도 학자금 대출만으로 대학생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이번 제도를 통해서 남은 3년의 재임 동안만이라도 대학생들의 반발을 무마시켜보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대단한 오판을 한 셈이다.

우리 속담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소는 농경사회에서 농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농사수단이다. 그런데 외상이기에 소를 잡아먹는다면 앞으로 농사를 어떻게 지을 것인지 한심한 일이지 않는가. 이와 같은 맥락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받은 대출금을 졸업 후에 일정수준의 소득이 생길 때 갚으면 된다고 하지만 이미 빚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둡게 하는 결과이다. 더구나 이번 제도는 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 계층에게 지원되던 무상장학금과 이자에 대한 지원을 없애면서 시행하겠다는 제도이다. 이 제도 때문에 대학생 장학금 예산은 30%가 줄었고 이 혜택을 받던 사람에게는 평생 빚을 안겨주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대학생 근로 장학금'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6000억 원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던 사업이다. 그런데 당초에 약속한 4%에 불과한 수준의 금액만을 교육과학기술부가 예산요구안으로 내놓았다고 하니 mb 정권은 국민의 신뢰가 '4% 남은 정부'에 불과하다는 말을 당연히 들어야 한다.

취업조차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현실에서 직장을 얻기도 쉽지 않거니와요즘 같은 불경기에 생각처럼 쉬이 돈을 번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기에 외상 소를 잡아먹듯이 외상 공부를 하고 나면 학부모나 대학생은 빚을 갚아야 한다는 정신적인 중압감에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현재의 고통을 나중으로 미룬다고 그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는 자녀교육을 위해 위장전입을 일삼고 대학등록금 걱정 따위는 해보지 않았을 이 정부의 각료가 만든 제도이다. 서민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 결과물이기에 대학들의 2학기 등록금 인상 발표에 이은 이 제도는 이명박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무마용이라는 질책을 받아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 한옥자
청주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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