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7장 가을 이야기

▲ <삽화=류상영>

벼농사는 겨울 동안 얼었던 계곡의 물이 풀리고 버들가지에 푸릇한 새싹이 돋아나면 시작이 된다. 먼저 모판을 만들어야 하는데 풀을 베고 나뭇잎을 긁어모아서 논에 넣고 자근자근 밟아서 상판을 만든다. 그 위에는 겨울 동안 아궁이에서 긁어내어 뒷간 구석에 모아 두었던 재를 뿌리고 못자리 흙이 말랑말랑해 지도록 물을 빼고 햇볕에 말린다.

햇볕을 받아서 따뜻한 흙에 미리 물에 담가 싹을 튀어 놓았던 볍씨를 뿌리고 물을 가두는 것으로 파종은 끝난다. 파종이 끝났다고 해서 모가 될 때까지 마냥 노는 것은 아니다. 못자리를 관리하는 틈틈이 밑거름이 될 퇴비를 해야 한다. 작년에 만들어 둔 퇴비가 없으면 산으로 올라가서 이제 막 키를 세우기 시작하는 갈대며, 물기가 축축하게 베어있는 여린 상수리나무에 싸리나무 등 닥치는 대로 낫으로 베어다 논에 뿌려 놓는다.그 다음에는 소를 부려서 쟁기로 한 번도 아니고 세 번 갈이를 해서 흙과 풀을 잘 섞어 놓는 것으로 밑거름은 얼추 끝이 난다.

모를 심기 전에는 논둑이 출렁이도록 물을 가두고 써레와 번지로 논바닥을 바르게 잡는다. 물을 가두어 둔 논에는 바람이 불때마다 물주름이 일어난다. 마치 연못이나 저수지처럼 보이는 물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희망이 솟아나기도 하고 한숨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올해는 작년보다 어쨌든 소출이 좋아서 나락을 한 섬이라도 더 빼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희망이고, 아무리 농사를 잘 져 놓아 봐야 논 주인에게 절반은 도지로 주고, 구장 수곡이네, 면사무소 세금이네, 장리쌀 값아야 하네. 장기판에서 차 띠꼬 포 띠다 보면 씬나락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숨인 것이다.

그래도 여하튼은 희망을 가져야. 아니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농민들의 심정이다. 밑거름이 어느 정도 삭아서 풀잎처럼 부드러워지면 슬슬 모네기 준비를 하는 농민들의 얼굴에는 가벼운 설레임들이 수시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모를 심는 시기는 하지를 중심으로 하여 닷새 앞서거나 닷새 늦게 심는 것이 좋다.

품앗이 일꾼들을 불러서 모를 내고 스무 날을 전후해서 초벌매기를 한다. 이때는 벼와 벼 사이에 있는 잡초와 흙을 호미로 파 엎는다. 다시 열흘이 지난 다음에 두벌매기를 하는데 풀을 뽑으면서 흙을 고르는 일을 한다. 다시 열흘 간격으로 애벌매기를 하는 틈틈이 벼가 무릎 높이로 자라면 피를 뽑아 주어야 한다.

벼 낱알이 차기 시작하면 참새 때가 모여들기 시작 한다. 초봄부터 정성을 들여 가꾼 벼를 참새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논 위에 사방팔방으로 새끼줄을 쳐서 빈 깡통을 매달아 놓는다.

논이 크면 새막을 만들어서 열두어 살 먹은 아이들을 사서 참새가 날아들면 새끼줄을 당겨서 깡통을 흔들어 새의 접근을 막는다. 그것도 아니면 뛔기를 쳐서 총소리를 내 새를 쫒는다. 뙈기는 볏짚으로 꼬아 만든 굵고 가는 끈 끝에 삼나무 껍질로 꼬아서 긴 채찍처럼 만든 기구다. 이것을 크게 돌려서 반대로 당겨치면 딱! 딱! 하는 소리가 총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기구다. 귀때기를 때린다는 말도 여기서 비롯된 말 일 것이다.

새를 쫓는 일은 벼를 재배하는 일 중에 중요한 일이어서 원두막처럼 지은 새막에서 한달이상 거주를 한다.

아침저녁 바람이 서늘해지고 하늘이 높으면 들판이 노랗게 변해가기 시작한다. 벼를 수확할 시기이다. 벼는 배어서 곧장 타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숫돌에다 낫을 시퍼렇도록 잘 갈아서 벼를 베어 일단 논에 깔아 말린다. 잘 마른 벼는 양손으로 잡아서 한웅큼 크기의 볏단을 만든다. 잘 마른 볏단은 등짐을 지거나 지게로 운반을 하여 탈곡기로 타작을 한다. 타작을 한 나락은 풍구를 돌려서 쭉정이나 티끌 북데기 같은 것을 날려버리고 순수한 알곡만 모아서 가마니에 담는다.

소작인 들은 볏가마니를 달구지나 지게로 지어 지주의 집에 운반해 주고 남은 벼는 뒤주나 가마니에 담아 사람이 자지 않는 골방에 보관하며 먹을 만큼 물레방아를 찧거나 디딜방아로 찧어서 쌀을 만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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