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갈듯 맑은 모시옷

여름 내 잘 입었던 모시적삼을 손질했다. 빳빳한 풀기를 빼느라 한나절 물에 담갔다가 손으로 조물조물 주물렀다. 한손에 들어온 적삼이 손가락 사이로 호르르 흘러내린다. 두 손안에 그것을 꼭 눌러 짜면서 비단 같은 한산모시 감촉에 감탄했다. 베란다 빨래 줄에서 나풀거리는 모시적삼은 생각보다 더 빠른 세월을 실감하게 한다.

여름이면 언제나 베옷을 입고 다니시던 시아버님 덕분에 베옷 손질을 오랫동안 해온 터다. 하얀 모시 바지저고리에 지팡이를 짚고 중절모를 쓰고 장에 나가시는 뒷모습을 보면서 손질하느라 힘들었던 수고가 보상되는 느낌을 받았었다. 유난히 마르고 키도 크지 않으셨지만 모시적삼을 입고 대문 밖을 나가시는 모습은 호탕하고 다정한 집안어른의 이미지로 각인 되었다. 매 번 풀을 먹여서 자근자근 밟거나 다듬이 방망이로 두드려 나른하고 반질반질하게 손질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 만큼 옷태가 나는지라 베옷 손질 하는 것은 내게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시부모님 병 수발하느라 힘들었다며 남편이 선물한 것이 한산모시 치마저고리였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그것을 얻어 입을 때 도종환시집 접시꽃 당신에 나오는 베옷이 연상 되었다. '살아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죽은 아내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상징으로 느껴졌던 베옷대신 날아갈듯 맑은 모시옷으로 나는 남편 마음을 받아 들였다. 한 번도 입지 못하고 여름을 날 때도 있었지만 매년 오월이면 모시옷을 손질해서 걸어 두었다.

작년가을 모임에서 한복 복식연구가를 만나 오랫동안 장롱에 묵혀 두었던 모시옷을 맡겼다. 분홍과 갈색이 조화된 천연 염색 치마저고리를 받아둔 순간 나는 예감했다. 나비처럼 화사한 내 여름을. 서른 중반에는 왠지 남의 옷 같았던 옷이 오십 중반의 나이가 되니 제대로 주인을 찾은 듯 어울렸다. 강의를 할 때도 입고 나갔고 행사에 초대 받으면 의례히 한복을 입었다. 여름의 땡볕이 즐거웠다. 지하철에서 한복을 입고 앉아 있으면 시선이 모아진다. 그리고 한마디씩 덕담을 한다. 오랫동안 장롱에 있던 옷을 이제는 꺼내 입어야겠다며 어떤 이는 내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어느 출판기념회에 초대되어 갔다가 뜻밖에 귀빈 대접을 받았다. 명함을 달라하기에 무심코 드렸더니 내빈 소개시간에 나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고 당황했었다. 미처 소개되지 못한 다른 내빈에게 미안한 마음도 생겼지만 한복을 입은 모습이 그 모임의 격을 높여준 것이라 생각하며 민망함을 달랠 수가 있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용모와 풍채, 몸가짐에 예절을 갖추고, 말씨와 언변이 분명하고, 책을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고 사물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나 잘 응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 중에 가장 먼저 띄는 것이 용모와 풍채가 아닌가 싶다. 밝고 화사한 낯빛 못지않게 의복 또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적잖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 여름에 모시적삼을 통해서 확인했다.

모시적삼은 보는 이도 시원하고 입는 이도 시원하다. 굳이 여러 벌이 필요치도 않다. 그저 깨끗이 손질해서 입기만 하면 그것으로 최상이다. 풀을 먹이고 구들구들 마르기전에 발로 꼭꼭 밟아 다림질을 해서 동정을 달아 놓으면 날아갈듯 맵시가 좋다. 매일 아침 입을 때 마다 손질하는 일이 전혀 귀찮지가 않았다. 매끄럽게 다려진 저고리를 보면 마음까지도 팽팽해진다.

그리고 모시옷은 계절을 알아차린다. 바람 서늘하여 모시옷 갈무리 하는 날, 목화솜 이불을 꺼내 놓으며 이렇게 세월이 주거니 받거니 흐르고 있음에 새삼 감탄한다.

▲ 유인순
천안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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