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7장 가을 이야기

▲ <삽화=류상영>

"마흔석 섬이라굽슈?"

황인술은 부지런히 머리를 굴려 보았다. 마흔석 섬이믄 쌀이 스물두 가마니에서 반 가마니 부족한 분량이다. 여섯 식구가 3년 반 동안 먹을 수 있는 쌀이다. 아니 그 정도의 쌀만 있으면 논을 보통 답으로 다섯 마지기는 충분히 살 수 있다.

"그 돈을 내년에 가실에 죄다 갚으라고 하믄 내가 도둑놈이지."

이복만은 황인술이 더 이상 계산을 하지 못하도록 막걸리 대접을 들어서 황인술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라믄유?"

"어여, 그 술이나 마시고 야기하세."

"아……알았시유."

황인술은 이복만이 아무런 이득도 없이 잠을 자고 있는 자기를 불러서 좋은 조건으로 논을 팔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일단 막걸리 대접을 들었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틀렸다. 허지만 너는 반드시 논을 되찾아야 한다. 알겄지? 저승에 계신 아버지가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기분 속에 막걸리를 마셨다.

"앞으로 사 년 동안 나누어서 갚게."

"사……사 년 동안 나누어 갚으라믄 한 해에 열한 섬씩만 변제를 하믄 된다는 야기유?"

황인술은 마흔석 섬을 사년 동안 나누어 갚으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너무 후한 조건으로 논을 넘길 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조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믄서도 이게 꿈인가 싶을 정도로 좋았다. 너무 놀라서 금방 마신 막걸 리가 울컥 기어 올라와서 손바닥으로 틀어막으며 도로 꿀꺽 삼켰다.

"일 년에 열한 섬씩이믄 자네가 시방 나한테 도조로 내는 것과 같은 분량이여. 그람 결국 자네한티 논을 공짜로 주는 것하고 머가 틀리겄나. 그려서 이자를 아주 쬐끔 붙이기로 했네. 장리쌀로 쳐서 복리로 계산을 하믄 너무나 엄청나서 갚기가 힘들팅께 기냥 단리로 계산을 해서 예순섬하고 섬 반이구먼. 여기서 서로 모르는 처지도 아닝께 반 섬은 뚝 떼 버리겠네. 남은 예순 네 섬을 사 년 동안 분할로 상환하게."

"그람 일 년에 몇 섬씩 갚아 나가능건가유?"

황인술은 그럼 그릏지,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다는 말이 틀림없구먼. 라고 생각하며 반문했다.

"가만있어 보자, 육십사 나누기 사믄 일 년에 열여섯 섬씩 사 년만 갚아가믄 그 땅은 자네 땅이 되는 걸세."

"아이구 영감님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못하겠구만유. 참말로 감사 합니다."

황인술은 넙죽 절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재빠르게 계산을 해 보았다. 다섯 마지기에서 소출되는 양은 대충 스무 섬이다. 그 중에서 열여섯 섬을 내 놓는다면 네 섬이 남는다. 네 섬으로 일 년을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토지수득세로 석 섬이 나가면 달랑 한 섬이 남는다. 이런저런 세금을 내려면 두 섬이 더 들어간다. 가족이 먹고 살 양식은 고사하고 세금을 내려면 한 섬을 빌려야 한다는 결론이다. 자식들 사친회비며 먹고 살 양식을 충당하려면 적어도 다섯섬. 일 년에 도합 여섯 섬을 빌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년이면 이자를 빼고 원금만 열두 섬이다. 사 년이면 스물네 섬,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만 해도 지금 일 년치 도조의 두 배 같은 분량이다. 거기다 이자를 포함하면 서른 섬이 되는 건 우습다. 벼 서른 섬이면 웬만한 논 두마지기 값이 넘는다. 이거, 개꿈 꾸고 똥 밟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마냥 좋아할 때만 아니라는 생각에 슬그머니 웃음을 지우고 이복만을 바라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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