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해안선 특징 고려 배 밑 평평하게 제작

▲ 청동거울에 보이는 고려시대 배.

한선(韓船)은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자연환경과 조화롭게 발전해온 우리 고유의 배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특히 우리 한선의 대부분은 배 밑이 평평한 구조로 되어있는데, 이는 수심이 비교적 낮고 평평한 갯벌을 가진 우리 해안의 자연환경을 고려한 선조들의 과학슬기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배의 역사는 신석기시대 함경북도 서포항의 조개무지(기원전 3000년)에서 발굴된 고래 뼈로 만든 노(櫓)와 경남 창녕의 통나무배, 울산 대곡리 바위그림(국보 285호)에 보이는 고래잡이배에서 비롯된다.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의 해안유적에서는 어로도구와 깊은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 뼈 등이 많이 발굴되고 있어서 당시 사람들이 배를 활용하여 먼 바다까지 나가 물고기 잡이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배의 모습은 신라와 가야의 무덤에서 발굴된 배모양토기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신라와 가야는 통나무 쪽배를 이용하여 어로 활동도 하고 돛을 달아 멀리 왜국(倭國)으로 항해하며 왕래하였다.

고구려와 백제도 선박제작기술의 발달로 해상 교통로를 개척하고 중국과 무역을 하면서 중국의 서해안 일대에 진출하였다.

막강한 수군(水軍) 함대(艦隊)를 바탕으로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고려는 수군 함선뿐만 아니라 조운선(漕運船)과 기타 전투선도 크게 발달하였다. 고려 말에는 최무선이 화포를 함선에 탑재하여 1380년의 진포해전과 1383년의 관음포해전에서 왜구를 크게 섬멸하였다.화포를 이용한 함대는 유럽보다 200년 앞서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배는 판옥선으로 대표된다. 판옥선은 구조와 기능 등 모든 면에서 우리 겨레과학기술이 응집된 혁신적인 전투함으로, 종래 1층으로 된 군선(軍船)과는 달리 2층 구조로 만든 배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노군(櫓軍)과 전사(戰士)들의 공간이 분리되어, 효과적으로 노를 젓고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안택선(일본선)은 조선의 판옥선이나 거북선에 비해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원양항해에 적합한 안택선은 통나무를 사용하여 화포의 반발력을 견딜 수 있었던 판옥선과는 달리 선체가 판자와 쇠못으로 연결돼 있어서 배에 무거운 화포를 설치할 수 없었다. 또한 방향전환에 있어서도 평평한 밑바닥을 가진 판옥선의 기동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으며, 상대적으로 낮은 배의 구조 때문에 근접전에서 불리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판옥선은 임진왜란 때 일본의 수군을 격파하여 조선 수군이 완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선사시대부터 우리 겨레는 해상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신라의 청해진은 동북아 해상교역을 주도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상인들과도 해상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조선시대에는 뛰어난 겨레과학기술을 바탕으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조선분야에서 선박 건조량 1위로서 세계최고수준에 올라 이미 해상선진국이 되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우리 겨레의 무한한 잠재력을 기반으로 초호화 크루즈선, 심해유전용 드릴쉽, 위그선(wigs) 등과 같은 고부가가치 첨단 선박개발을 통해 신 해양시대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 해가야 할 것이다.

▲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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