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병진 정신과 전문의
'페르조나'란 고대의 서양 연극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말한다. 즉 연극할 때 외부 관객에게 보여 지는 얼굴을 말한다. 즉 외부에 그런 사람으로 보여 지고 싶다는 의도 하에 쓰는 얼굴가면이다. 가면은 가면일 뿐 진짜 얼굴은 그 가면 뒤에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인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바램으로 우리는 약하고 미성숙해보이는 그런 모습은 안으로 감추고, 마치 안정되고 밝고 쿨하고 잘 정리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양 보이는 가면을 쓴다. 아침에 막 일어난 우리는 아직 안정된 가면이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 아이들과 배우자에게는 가면이 자꾸 벗겨져서 가면 속의 진짜 얼굴인 어느 정도 신경질 적이고 어느 정도 애정결핍 증상이 있는 그런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하지만 곧 출근 준비를 하며 웬만한 바람에는 벗겨지지 않는 가면을 준비한다.

일상속의 '위장된 얼굴'

사실 가면이 자신의 진짜 얼굴이 아니고 외부에 잘 보이기 위한 위장된 얼굴이니, 무조건 나쁘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다. 가면이 너무 쉽게 벗겨지거나(자기감정을 억제할 줄 모르고 감정이 느껴지면 다 드러내는) 어른이 됐는데도 적당한 가면이 준비되지 못한(남이 날 어떻게 보든 사회규범과 타인의 평가, 비난을 무시하는) 사람은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에 참 거북스럽다. 하지만 가면을 너무 중시해서 하루를 보내며 느껴지는 서운함, 질투, 분노, 짜증, 경쟁심, 의존과 사랑의 욕구 등을 가면 속에 열심히 감춰온 사람은 힘이 든다. 하루를 살면서 부지불식간에 뭔가 답답하고 지친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 가면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서 지치고 답답하고 적당히 짜증이 나있게 된다. 이런 사람은 저녁이 다가오면 공허함을 채워줄 술 생각이 나기도하고, 체면 차릴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거나 가면이 없는 아이로 퇴행해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집으로 돌아가 응석받이처럼 재롱을 떨고 싶어지기도 한다.

또 이도 저도 싫으면 그냥 짜증나고 답답한 마음으로 대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여러가지 가면 준비해야

밖에서 잘 보이느라 참을 만큼 참은 사람은, 조금만 가족이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정제되지 한 감정을 노출한다. 놀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아이, 왜 표정이 좋지 않냐고 반복해서 묻는 아내, 공부를 하다가 tv를 보는(사실 공부를 하다가 잠시)아이 등 뭔가 눈에 거슬리는보이면 가차 없이 느낀 감정을 내 뱉는다. 자신과 가족의 관계는 점차 그냥 사는 존재들의관계로 변질되어 간다. 자 이제 이쯤 되면 가면에 대해 고민해 볼 때이다. 없어도 문제고 너무 견고해도 문제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답은 상황에 맞는 여러 가지 가면이 준비되어야 하고, 가면 속의 자신의 감정을 인식해서 가면이 가면이라는 걸 알고 살며, 자신의 진짜 감정을 생활 속에서 어떻게 끼워 넣어 표현해 낼 것인지에 대한 머리 아픈 모색이 필요하다. 각자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어차피 머리가 아픈 만큼 성장한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