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2장 달 그림자

▲ <삽화=류상영>

원래는 1952년 7월과 1954년 11월 공포된 개정헌법에 따라 민의원民議院과 참의원參議院의 양원을 구성하려 하였으나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그래서 4대 때는 참의원은 뽑지 않고 민의원만 뽑기로 했다.

"그려, 구장이 어련히 알아서 물어 봤겄어? 그랑께 오씨나 구장 말대로 그 문제는 우리가 알고 싶지 않아도 차차 알게 될낑게 이쯤에서 그만 일어나는 것이 좋겠네. 구장네도 식구들 찌리 할 일이 있을 거잖여."

"오늘 즈녁에 잠을 자믄 눈썹이 하얗게 쉰다고 하잖유."

변쌍출이 군용털모자를 머리에 뒤집어 쓸 준비를 하며 말했다.

"늙은이가 눈썹이 쉬믄 얼매나 쉬겄어. 자, 어여 그만 일어나지."

초저녁 잠이 많은 순배영감이 길게 하품을 하며 일어섰다.

"집집마다 집에 돌아가시믄 할 일이 있으실팅께 더 노시다 가라고 잡을 수도 읎구만유."

집주인인 황인술이 일어서자 모두들 알맞게 취기가 오른 얼굴로 일어섰다. 방문 앞에 앉아 있던 김춘섭이 먼저 나가서 고무신을 꽤 신었다. 댓돌위에 있던 고무신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둥구나무에 고사를 지내는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변쌍출은 그 동안 고기는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 행여 원하지 않게 상갓집에 들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학산장을 보러 가지도 않았다. 동네 사랑방 출입도 삼갔고 골목에서 동네사람들과 마주치면 간단한 안부인사만 하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양력으로는 3월 초지만 아직 추위가 물러나지 않았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 밭둑 검불 속에서는 쑥이며 벌금자리에 냉이싹이 파랗게 돋아나고 있지만 바람은 매웠다.

변쌍출은 차가운 햇살이 마당에 역삼각형으로 점령하고 있을 즈음에 정지에서 물을 덥혀서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학산 댕겨 올팅께 그리 알고 있어."

변쌍출은 고사를 지낼 제물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변쌍출의 아내 용산댁은 혼자 제물을 마련해야 하는 신성한 몸이라서 마당 밖까지 나가지 않고 마당 안에서 남편을 배웅했다.

학산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부러 과일을 사다 먹는 집안이 드문 탓에 영동읍내와 다르게 과일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없었다. 어물전에서 제물용으로 파는 과일이 전부다. 변쌍출은 몇 군데의 어물전 중에서 집안 내력을 잘 알고 있는 가게로 갔다. 집안 내력을 모르는 집은 명절 끝에 상을 당했거나 출산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였다.

과일은 돈을 따지지 않고 흠집이 없거나 색깔이 잘 나온 최상급의 상품만 골라서 샀다. 그 다음에는 건어물을 살 차례다. 마른 문어며, 가오리, 북어, 대구포는 크기나 가격을 따지지 않고 상자에서 제일 먼저 꺼낸 것들만 골라서 샀다. 앞에 손님이 제사용으로 건어물을 사갔다면 부정을 타기 때문이다.

변쌍출은 제물을 구하고 나니까 점심때가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식당에 가면 필연적으로 고기를 손질한 도마를 사용한 음식을 먹게 된다는 생각에 주린 배를 쓰다듬으며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해서 제사 당일 날 쓸 제물은 문종이로 잘 싸서 사랑방 깨끗한 종이 박스에 넣어서 시렁위에 잘 모셔두었다.

드디어 고사를 지내는 날이 됐다.

모산 사람들은 6.25때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순배영감의 자식 형제와 이병호의 부모가 참혹하게 죽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고사를 다시 지내기 시작하면서 고사날에는 개도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신성한 날로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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