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2장 달 그림자

▲ <삽화=류상영>

변쌍출은 순배영감의 말에 깜짝 놀라면서도 목소리를 죽이며 둥구나무를 바라본다. 만약 윤길동의 딸이 살을 맞았다면 제관에게도 책임이 있다. 제관의 몸이 신성하지 못했을 경우 독한 귀신이 나와서 약한 사람을 골라서 나쁜 기氣를 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네는 잘했겄지, 하지만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어딘가 안 좋은 부적을 숨겨 놓았을지도 모를 일이잖여."

"그……그려, 난 암만 생각해도 잘못 한 기 없어유. 그랑께 형님 말씀이……"

"그만햐. 좋은 것도 아닌데 이른 날 괜히 동리 사람들 맘 상하게 할 필요는 읎응께."

순배영감은 윤길동이 겨우 안심을 했다는 얼굴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변쌍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길동이 많이 놀랬겄구먼. 즈녁에 뭘 잘 못 먹은 기 아녀?"

이동하가 평소 그 답지 않게 윤길동에게 술을 권하며 걱정했다는 얼굴로 물었다.

"글씨유. 즈녁에는 이따 고사 음식 먹는다고 별로 먹지도 않은 거 같은디……"

"자, 자! 길동이 딸내미는 괜찮대유. 괜찮다고 했응께 어여 음복들 하고 한잔 씩 합시다. 거기 뉘여, 춘셉이하고 오씨는 얼른 돼지괴기부텀 짤라 봐. 그라고 해룡네는 집에 가서 술 주전자 좀 더 갖고 와야 쓰겄어. 그 짝에서 어정거리고 있는 이가 뉘여? 병태 형님이구먼, 병태 형님 늦게까지 먹고 마실라믄 장작불 좀 피워야 되지 않겄슈? 우리 집 뒷간 옆에 준비 해 둔 장작이 있응께 그걸 갔다가 저 짝에다 불 좀 피워유."

윤길동의 우울한 목소리와 다르게 황인술은 갑자기 신이 안 사람처럼 설치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웅성웅성 거리면서 지금부터 시작 될 술잔치를 위해서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부챗살처럼 퍼지 둥구나무는 만월이 다 되어가는 하얀 달덩어리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토요일이다.

날씨가 쌀쌀하지만 난로를 피울 정도로 추운 날씨는 아니다. 그런데도 면사무소 사무실 가운데는 드럼통을 잘라 만든 석탄난로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난로 위에는 막걸리를 반 말이나 담을 수 있는 큼직한 양은주전자가 얹어 있다. 보리차가 끓고 있는 주전자 꼭지에서는 허연 김이 계속 피어오른다. 일제 때 나무로 지은 건물이라서 바람이 불 때 마다 창틀이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간간히 흘러나온다. 하지만 난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사무실 안은 훈훈했다. 몇몇 직원들은 잠바를 벗어서 위자에 걸어 놓고 일을 하고 있다.

면장은 출근을 군청으로 했다. 회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이동하에게 영동 읍내에서 볼 일을 본 다음에군청에서 근무를 하는 친구를 만나서 점심을 먹은 후에 퇴근을 하겠다는 말을 남겼었다.

면장이 없는 면사무소는 부면장인 이동하가 장이다.

이동하는 열 시 쯤에 각 계장들을 면장실로 불러들여 회의를 했었다. 총무계장, 호적계장이며, 산업계장, 농지계장, 병사계장 들의 업무를 형식적으로 점검한 뒤에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가 본 회의 주제였다.

"그릏지 않아도 장터 전주 식당 하는 김 사장한티서 전화가 왔었슈. 어지께 여티에서 올미로 노루를 한 마리 잡았다고 드시러 오라구유."
병사 계장이 점심 문제라면 더 이상 생각해 볼 여지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찌라만 가능겨? 파출소 김 소장하고, 농협조합 남 조합장은 안 부르고?"

이동하가 담배를 입에 물며 구미가 당긴다는 얼굴로 물었다.

"노루가 워녕 커서 파출소하고, 농협조합같은디는 따로 부른다고 하던 거 가튜."

"그람, 거기루 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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