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있는 미국드라마 중 하나인 cis(crime scene investigation)는 철저한 과학적 증거분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과학 수사대의 이야기이다. csi 대원들은 강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지문 수사기법을 사용하는데, 신원 확인을 위해 유전자 정보를 이용하는 상황은 더 이상 드라마나 영화 같은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앞으로 1년 안에 자국민은 물론 자국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dna를 채취하여 10년 안에 전 국민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확보한 dna 정보는 미제 사건 해결이나 재해로 인한 시신 신원 확인 등에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도 이미 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범죄수사에 활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성범죄나 살인 등 강력범죄자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반영구적으로 보관하기 위한 법률을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과학의 발달은 편리함도 가져다주지만, 인권침해의 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인간의 난자를 추출하여 연구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찬반 의견의 대립은 윤리 문제와 결부되어 한동안 많은 논란을 유발하였다. 환자의 치료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측면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시각이 대립하면서 아직도 의견의 대립이 해결되지 못한 것이다. dna 감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개개인의 dna 정보는 편리성과 정확성이라는 이점을 제공해 주지만, 개인의 신상 정보와 마찬가지로 매우 사적이며 보호될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국가 수준에서 개인의 dna를 채취하고 보관하면서 이용하는 것은 인권침해의 논란을 유발하게 된다. 꼭 필요한 강력 사건의 해결을 통해 이루게 될 사회 안전망 구축이 우선되어야 하는지, 인권이 우선되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유전자 감식에 사용하는 dna에는 23억 개나 되는 수많은 유전 암호가 있으나, 이는 전체 dna의 2%에 불과하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부분을 엑손이라고 부르는데, 나머지 98%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정보들이 가득 차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쓸모없는 정크 정보들을 인트론이라고 부른다. 마치 햄버거로 대표되는 정크 푸드(junk food)가 인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와 유사하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트론에 해당하는 부분이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인트론에 있는 정보들은 사람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해독하면 누가 누구인지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범인이 먹다 버린 컵이나 담배꽁초 등에 남아 있는 매우 소량의 dna를 면봉과 같은 도구로 닦아내서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인트론이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트론은 우리 개개인의 인간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가장 잘 포함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존재할 가치가 없어 보이는 쓸모없는 부분이 사실은 우리 개인의 고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삶을 살면서 나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이나 물건들이 나중에 가서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까이 있을 때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경향이 크다. 옆에 있으나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없는지 한번 살펴볼 때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늦은 가을에 인트론의 의미는 우리에게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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