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행동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후미진 골목 전봇대에 가위 하나쯤 그려져 있는 풍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지만 취객의 방뇨는 여전하다. 제발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당부의 글로 아무리 애원해도 자고나면 쓰레기가 쌓인다. 정해진 장소가 아니어도 늘 쓰레기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버리는데 편리한 장소를 고집한다. 주차도 마찬가지이다. 주차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몇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슬그머니 주차시킨다. 그러다가 과태료라도 날아오는 날에는 스스로를 책망하기보다는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주차장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은 행동들로부터 나도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중국 사람들은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닌다고 한다. 사람들이 어느 집 담벼락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출근을 하는데 그게 정도가 심해 집주인이 골머리를 앓았단다. 담벼락에 자전거를 주차하지 말라고 온갖 경고문을 써 붙이기도 하고 협박하는 글을 써 붙여도 자전거는 줄지 않고 주인의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만 갔는데 어느 날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단다. 그날로부터 자전거가 하나도 주차되지 않았다는데 자전거가 주차된 담벼락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자전거 공짜로 드립니다. 아무나 가져가십시오."

수업을 하다보면 졸거나 딴 짓을 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밤새 아르바이트를 했다거나 시험공부 하느라 잠을 설친 것이 아니어도 피교육자의 입장은 언제나 피곤한 것이어서 그렇다 치자. 잠을 깨우기 위해 호통을 치거나 이름을 불러 주의를 준다 해도 오래지 않아 또 졸게 된다. 그 학생은 이미 졸려고 결심하고 강의실에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내가 잤나, 선생님이 재운거지" 그러니 재운 선생님이 깨워야한다는 말도 있다. 스스로에게 어떤 동기가 있어야 수업에 열중 할 수 있다지만 자의반 타의반 진로를 선택한 아이들로서 모든 과목 모든 시간에 적절한 동기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갖은 과목인데도 어떤 날은 일제히 눈망울이 초롱초롱 하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흥미로울 수 있는 주제를 다룰 때는 쉬는 시간 없이 100분 수업을 진행해도 끄떡없다.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들의 진로를 얘기할 때, 재미있는 직업관련 동영상을 볼 때, 그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무엇인지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려 주는 것, 그것을 위해 고민한다. 누구나 자신의 미래 진로에 대해서는 호기심과 비전과 설레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무언의 표정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그들의 마음을 후려내어 한하기 동안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아 보내고 싶다. 커뮤니케이션 중 단 7%만이 말하는 내용에 의해 전달되고 38%는 우리가 내는 음성에 의해, 55%는 신체언어를 통해 전달된다고 한다. 눈과 가슴으로 들어주고 느낌으로 표현 하여 강요되지 않은 자발성을 끌어 낼 때 효과적으로 내용이 전달 될 것이라 생각한다.

"불쌍한 장님입니다. 배가 고파 죽겠습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구걸하는 장님이 하루 종일 추위에 떨고 있어도 적선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 때 지나던 시인이 새로운 문장을 팻말에 써 넣었다 한다. "봄이 오고 있지만 저는 봄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자 그의 동냥 깡통에는 쨍그랑, 쨍그랑 동전 부딪는 소리가 났고 손을 잡아주며 따뜻한 격려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자발적 동기를 끌어내는 한마디 "자전거 공짜로 드립니다. 아무나 가져가십시오." 한 문장으로 수 백 대의 자전거가 마술처럼 사라진 골목을 떠올리며그 위력을 경험하고 싶다.

▲ 유인순
천안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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