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산업 체질개선 필요

'임갈굴정(臨渴掘井)'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음식을 먹다가 목이 메자 그때서야 우물을 판다는 뜻으로 아무리 빨리 한다고 한들 이미 늦었을 때를 비유할 때 쓰인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도 우리 경제성장률을 5.5%로 상향조정 하는가 하면 oecd 국가 중 한국이 금융위기에서 가장 빠르고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 갑자기 터진 두바이발 금융악재로 약간의 혼란이 있지만 내년도 우리 경제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물가와 고용 불안, 투자와 소비 위축이 여전해 낙관적 평가는 장밋빛 전망에 그칠 우려가 크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건설산업도 최근 몇 년간의 침체를 벗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부에서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상황을 건설산업 내부로 돌려보면 그리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한나라당 강길부 의원은 우리 건설산업의 현 주소를 말해주는 의미 있는 지적을 내 놓았다. 강 의원은 우리 건설업계가 지난해 해외에서 사상 최대인 476억달러를 수주했지만 외화가득률은 33%에 불과했는데 그 원인은 핵심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더 나아가 우리 건설업계의 엔지니어링 기술력은 선진국 대비 74.3% 수준이며 특히 사업성 분석, 설계능력 등 고부가가치 영역은 선진국 대비 60%에 불과해 해외에서 대규모 공사를 수주해도 고급기술 인건비 등은 전체 수주액의 3분의 2 이상이 다시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의 지적은 무엇을 뜻하는가. 국내 건설산업의 체질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산업도 이제는 굴뚝산업이 아니다. 우리 건설산업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먼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설계 등 엔지니어링 분야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건설업계의 양극화 현상도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와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imf 환란이후 수도권업체와 지방업체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4대강 사업' 역시 대형 건설업체에 유리한 방식으로 발주되고 있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 자동차 소비자 단체에서 국내 모 자동차 회사에 대한 불매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비싼 가격으로 판매한 자금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우리 건설산업도 이와 다른 모습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업체들은 국내에서 대형 공사를 독식하는 상황을 즐기면서(?) 정작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핵심 기술능력 배양에는 소홀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던진다. 정부가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는 사업자체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관련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대안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대형 건설사가 공사를 독식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 건설산업의 미래는 암울하다.

우리 건설산업은 과거에 비해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파생효과가 매우 큰 국가기간산업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핵심 기술에서 취약점이 노출되고 있고, 국내에서는 대·중소기업간, 수도권·지방기업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되듯 건설업계도 정부도 '임갈굴정'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좀 더 냉철하게 현실을 판단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본다.

▲ 박덕흠
대한전문건설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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