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부, 호탄의 밤과 아침

▲ 사진 1 저녁시간 광장에 모인 호탄사람들? 사진 2 호탄시 옥두호텔 앞 광장에서 펼쳐지는 예술제 사진 3 옥을 캐기 위하여 파헤쳐진 백옥강 사진 4 노점에서 팔고 있는 옥은 진품 사진 5 호탄의 아침 백양나무 가로수길을 달리고 있는 당나귀 마차들 사진 6 작은 당나귀가 끌고 있는 마차 사진 7 전통의상을 입은 위구르족 여인들의 모습 사진 8 실크로드와 차마고도가 만나는 예청
어둠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는 저녁, 호탄시 광장에 있는 마오쩌둥과 위구르 지도자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의 커다란 동상은 하나가 되는 중국을 대변하고 있다. 이런 모습의 동상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중국의 욕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나 중국인들의 속내야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가는 일로 당연하고 그 계획은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저녁 잠자리로 잡은 옥두호텔 앞 커다란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고등학교 학생들의 민속무용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데 위구르족 처녀들의 춤사위가 매우 아름답다. 광장주변은 아이들의 놀이기구까지 동원되어 한밤 축제의 마당이 펼쳐지고 있으니 사회주의 국가라는 기분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국 상품도 더러 보일 정도로 시장개방과 현대화 되고 있는 호탄의 앞날은 또 중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갈까?급변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며 한국은 어떻게 대응을 하여야 할까.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실크로드 서역남도의 중심으로 보이는 호탄(和田·화전·허텐·khotan)의 옛 이름은 우전국(于田國)으로 서역남도의 가장 큰 도시였다고 한다. 백옥하(白玉河)와 흑옥하(黑玉河) 사이에 있으며 중국인들이 귀하게 여기는 연옥의 산지이다. 3세기 무렵에는 동서교역으로 번영하며 서역남도의 대국으로 발전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우기도 하였다고 한다. 당(唐)나라 초기에는 북쪽의 서돌궐(西突厥)에 병합되기도 하였고 당나라의 서역진출 정책에 의하여 주변의 오아시스국가들과 함께 멸망하고 만다. 한때는 토번의 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그 뒤 원나라와 청나라에 지배를 받게 된다.
호탄지역은 이슬람세력이 파미르고원을 넘어 동쪽으로 진출하는 10세기 무렵 천산산맥의 남쪽으로 동서교통의 중심선이 이동을 하자 쇠퇴하기 시작하며 지금도 천산남로의 다른 오아시스 도시보다 찾는 이들이 많지 않다. 대승불교가 번성했다고 하는 호탄지역에 불교유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이슬람권이 세력을 잡으며 불교유적 파괴로 보존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대국가시절 불교가 흥하던 실크로드지역으로 이슬람세력이 밀려올 때 한꺼번에 많은 군사를 동원해 침략을 한 것이 아닌 소수의 이슬람인들이 끈질기고 순교에 가까운 침략으로 많은 사람들의 희생 속에 이지역의 불교 세력을 몰아내고 이슬람화에 성공을 하였다고 한다. 종교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느끼는 내용이다.
곤륜산하면 호탄이 떠오르고 호탄하면 호탄의 생명선으로 곤륜산에서 시작하는 백옥, 흑옥 강에서 나오는 옥이 호탄의 보물이 되어 부를 축적하고 있다. 지금은 중장비까지 갖추고 포크레인 등을 동원해 옥을 캐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거리에서 상점에서 파는 많은 옥들을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중국이 짝퉁의 세상이라 하더니 옥까지 가짜를 만들어 판다고 이군이 주의를 준다. 호탄의 옥에 대한 가치가 높은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 tv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농구공만한 옥이 우리 돈으로 10억 원의 가치가 있으며 다른 옥돌 몇 개를 더하여 45억원이 된다고 소개해 깜짝 놀랐다. 이게 현대판 중국판 로또가 아닌가 싶다.
호탄을 떠나던 날, 호탄의 아침은 백양나무 가로수길 사이로 시작 하는 것 같다. 시내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도 나무줄기 아래를 흰색으로 칠을 한 백양나무 가로수가 빽빽이 시원스럽게 서있고 그 도로 위를 수많은 당나귀 마차들이 짐을 실고 오고간다. 가로수 사이로 하늘이 실금처럼 살짝 보이고 포장된 도로라서 먼지가 나지 않아 좋으나 옛 모습의 운치는 없는 것 같다. 백양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가며 청주의 플라타너스 나무로 된 가로수 길을 떠올린다. 청주의 가로수길은 세 줄로 심고 나무가 자라 하늘이 보이지 않는 가로수터널길이 되어 색다른 멋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서역남도를 따라 카스갈까지 먼길을 이동하고 있다.
호탄-피상-예청-사차(야르칸드)-영길사(인기샤)-카스로 이어지는 서역남로의 긴 여행이 카스에서 파미르고원을 오르며 막을 내리게 되는데 동서로 뻗어가는 곤륜산맥의 북쪽을 따라가는 약 600km에 달하는 거리이다. 날씨가 좋으면 왼쪽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k2봉(喬戈里峰 교과리봉 8611m)을 볼 수 있다 하여 기대를 하나 오늘은 운이 따르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사막을 보며 달려간다.
피상 지역을 지나며 모내기가 끝난 논을 보니 새삼스럽다. 사막지대에서 벼가 재배되는 것을 본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고 오아시스지대 일부를 논으로 개간을 하여 물을 대고 어떤 논은 직파재배를 하고 어떤 논은 줄을 띄어 심어 놓았다. 우리의 시골모습과 비슷한 것이 마치 군자산 아래 펼쳐지고 있는 칠성에 있는 쌍곡계곡의 작은 논들과 밭떼기처럼 보인다. 미루나무가 줄을 지어 서서 달려가고 있고 살구나무가 둘러싼 평화로운 마을들이 이따금 보여 머물다가고 싶은 느낌이 든다.
한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시골풍경이 계속되고 작은 마을로 알고 있던 예청에 도착하니 도시규모가 꽤 크다. 인구 40만으로 20만 인구인 호탄보다 더 많다. 한나라 때는 사처쯔허국(莎車子合國)이 있던 곳으로 하얼하리커(哈爾哈里克)로 부르고 있다. 평균 강수량이 54mm로 중국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라 한다. 다만 도시규모에 비하여 식당의 화장실이 물도 잘 나오지 않으니 불편한 것을 참아야 한다.
예청(카르길릭)은 또 다른 교통의 중심지이다. 예청 부근에서 남쪽 곤륜산맥쪽으로 길은 갈라져 카라코람산맥 북쪽을 따라 톄륭탄 부근에서 곤륜산맥을 넘고, 우장에서 다시 갈라져 한길은 티벳 지역의 중앙 부근으로 가고, 한길은 히말라야 산맥의 북쪽기슭을 따라 티벳의 주도 라싸를 향하며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차마고도와 연결하고 있다. 이 길도 가보고 싶은 길 중의 하나인데 누군가가 "가보고 싶은 곳은 많으나 오라는 데는 없네"하며 노래하듯 던지는 한마디가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예청(카르길릭)에서 점심을 먹고 거리 구경을 하는데 다소 불편하여 보이는 위구르족 전통의상을 입고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지나가는 여인네들의 모습이 있어 눈길을 끄는데 마치 청주의 성안길에서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옛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 옆으로 컴퓨터 게임방이 있어 들여다보니 게임에 빠져 들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과거와 현대의 모습이 공존하는 중국의 모습을 실크로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급변하는 실크로드의 모습을 보며 카스갈을 향해 달려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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