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민족이 우선

최근에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을 펴냈다. 그 숫자가 2천여명으로 나왔다. 그런데 성격이 비슷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위원회에서 약 4년 동안 조사를 해서 최근에 명단을 발표했는데 그곳에서는 1천5명이 나왔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잣대가 달라서 숫자의 차이가 나는 듯한데, 필자의 관심이 가는 것은 그 선별 기준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화가 운보 김기창과 전 대통령 박정희이다.
민족문제 연구소 명단에는 김기창과 박정희가 모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진상위원회에서는 김기창은 들어갔으나 박정희는 빠졌다.
김기창은 일제 말기에 조선인 학도병 징집을 찬양하는 내용의 그림을 그린 일이 있었다. 아마 그것이 원인이 되어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낙인이 찍힌 듯하다. 박정희는 초등학교 선생으로 있다가 군인이 되고 싶어 만주 군관학교에 시험을 보았는데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조국에 몸바쳐 충성하겠다는 내용의 혈서를 써서 제출했고, 그 때문인지 합격을 해서 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 후에 일본 육사에 들어갔고, 해방 전에는 일본군 장교가 되었다.

- 지도자는 민족이 우선

진상위원회에서 보는 견해는 별 생각 없이 친일 그림 한 장 그려준 것은 반민족이고, 조국(여기서의 조국은 일본이다)에 충성하겠다고 혈서를 쓰고 일본군 장교가 된 것은 반민족 행위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해방 후, 개국 초기 이승만 정권 시기에 민족반역자 처결 문제가 대두된 일이 있었다. 이때도 친일에 대한 경중을 가리기 어려웠든지 고심한 흔적이 있다. 그래서 일정한 등급의 직책 이상 일제하 공무원이 된 사람, 훈장이나 작위를 받은 사람, 특별한 직책(경찰이나 헌병)으로 조선인을 학대한 사람, 군인으로는 고급 장교(령관급) 이상의 직책을 가진 사람 등으로 분류했다. 그렇게 하자 약 2백여 명이 민족반역자로 명단에 올랐으며, 그들을 전원 체포해서 재판을 하라는 내용이 국회의 의결을 거쳐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유혈 충돌이 일어나면서 철폐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앞장서서 조선인들을 학대한 사람도 있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받고 그림을 그려 주거나, 관권에 못 이겨서 마지못해 찬양하는 시를 써주거나, 자신의 성격에 맞아서, 하나의 직장으로 생각하고 군인이 되겠다고 나서서 일본군 장교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를 친일을 한 민족 반역자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좀 더 변명을 해준다면, 당시 한국을 떠나서 망명생활을 하던 인사들은 자유스러웠지만, 국내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총독부로부터 여러 가지 압력을 받았을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는 것은 민족의 지도자란, 또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그가 시골의 이름없는 농사꾼이라면 개인적인 일이겠지만, 이 땅의 지식인이라든지 지도자라면 민족을 생각했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순교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 박 전 대통령 누락 문제

그렇듯이 최근에 언급이 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 지원 혈서 문제는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했기에과거의 그 허물조차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당시 그가 일본을 조국으로 본 견해라든지, 혈서까지 쓰면서 충성을 하려고 군인이 되겠다고 한 것이 본심이었는지, 아니면 군인이 되는 것이 성격에 맞을 것 같아 별 생각 없이 그랬는지 그 진실은 알 수없는 일이지만, 그 행위 자체는 민족 반역이다.
전에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아우스비치 유태인 수용소를 재현해 놓은 시설을 본 일이 있다. 그 참혹한 현장에 각국의 나라말로 이런 문구를 써놓은 것을 보았다.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우리도 그런 심정으로 친일 명단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정현웅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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