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인력 태부족에 조사기관도 못구해

대학은 연 150일을 초과해 발굴조사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을 문화재청이 폐지키로 했다고 발표한 지난 5월7일. 한양대박물관 전화통엔 불이 났다. 공사 시행에 앞서 반드시 문화재 조사를 해야 하는 시행업자들이 "제발 발굴 좀 해 달라"고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시간, 경북 영주 소재 동양대박물관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발굴단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른 공사시행자들이 문화재청 발표와 동시에 대학박물관을 붙들고 늘어졌다.

하지만 연간 150일이라는 규제선이 풀리기 위해서는 법이 바뀌어야 한다. 문화재청 발표는 이 규제조항을 폐지하겠다는 것이었지, 이미 폐지했다는 말이 아니었다.

규제 폐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대학박물관들 또한 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다. 발굴현장에 투입할 만한 인력이 이미 전국에 산재한 30여 개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으로 대부분이 빠져 나간 상태인 데다, 그나마 남은 인력으로는 현재 조사 중인 현장을 감당하기에도 버겁기 때문이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안신원 교수는 "문의전화 중에는 `1년이라도 기다릴 테니 제발 우리 현장을 발굴만 해 달라`는 요청도 있다"고 전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공사면적 3만㎡(약 1만평) 이상일 경우에는 공사에 앞서 반드시 문화재 지표조사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 결과에 따라 매장문화재가 있음이 확실하거나 그럴 곳으로 의심되는 곳은 본격 발굴 대상지로 결정된다.

사업대상지가 3만㎡ 이하라고 해도 예외는 많다. 기존에 매장문화재가 있다고 보고된 지역이거나, 주변에 주요 유적지가 있을 경우에는 발굴을 해야 한다. 나아가경주나 공주, 부여, 익산과 같은 고도(古都)는 소규모 하수도 공사라든가 단독주택 공사라 해도 반드시 문화재 조사를 해야 한다.

이처럼 발굴단을 찾아 떠도는 공사장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하지만 매장문화전문기관 중 하나인 고고환경연구소 김무중 조사실장은 "200-300건이 전국을 떠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질까?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와 공급이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고고학 발굴수요는 폭증하는데 비해 정작 그런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나 인력은 태부족이다.

연간 한국고고학 발굴건수는 1999년 331건을 기록했을 때, 그 수치가 많다고 이미 화제가 되었으나 7년이 흐른 지금은 이런 수치는 `구석기 시대" 통계로 전락했다.

기하급수적인 증가세를 기록하다가 2006년에는 1천300건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 반면에 통계수치가 확보된 2004년도 12월말 현재 매장문화재 조사 전문인력은 839명이며 그 중 실질적인 조사 활동이 가능한 인력은 750명(대학교수 90명 제외)가량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같은 해 총 발굴조사 건수 999건과 대비할 때 전문인력 1인당 조사 수행 건수는 1.3건이며, 총 조사면적 3천447만㎡ 대비 1인당 조사 면적은 4만5천960㎡(약1만4천평)나 된다. 조사원 한 사람이 연평균 1만5천평 가량을 실제 발굴했다면, 그는 슈퍼맨이다.

그럼에도 이런 발굴이 실제로 가능했던 것은 고고학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아는 `편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임조사원 한 명이 동시에 두 군데 이상의 발굴현장 책임자로 일한 것으로 서류를 조작했던 것이다.

이런 편법은 누구나가 알면서도 누구나가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누구나에 문화재 정책 주무 정부기관인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도 당연히 포함된다.

문화재위원이자 한국고고학회장인 최병현 숭실대 교수는 "그런 점에서는 나 또한 범법자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이런 현실적 불가피성에 대한 고려나 이해없이 덮어 놓고 고고학계를 날강도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편법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러지 않고서는 전국적인 발굴수요를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이것이 문제가 되어 발굴책임자들이 수사기관에 수시로 불려가고 심지어 그 중 일부는 검찰에 구속되는 사태를 불렀다.

최근에는 이런 편법마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문화재청과 매장문화재 전문기관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일부 기관에 대한 검찰 수사 착수는 발굴현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특히, 조사원이나 발굴장비의 중복 투입이 이제는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발굴조사 건수 자체가 급감하고 있다.

가뜩이나 발굴단과 발굴인력이 모자라는 판국에 고고학계에 몰아치는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는 발굴조사기관을 구하지 못해 전국을 떠도는 공사판을 눈더미처럼 늘리고 있다.

최병현 고고학회장은 "이런 난관을 타개한다는 명분으로, 나아가 고고학계 전체가 마치 비도덕적 집단인양 몰아 부치면서 정부는 매장문화재 규제를 대폭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면서 "매장문화재는 어떤 경우건 철저히 보호받아야 하며, 불가피한 경우에는 철저하게 조사되고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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