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마당] 도한호 침례신학대학교 총장

비행기가 착륙하면 기내 방송에서는 별도의 안내 방송이 있을 때까지는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방송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제일 먼저 우르르 일어서는 이들이 예외 없이 한국 사람들이다. 꼭 같이 바쁜 사람들이며 같은 비행기를 갈아 탈 사람들인데도 왜들 그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비행기 통로를 빠져 나올 때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앞좌석에서부터 차례차례 내리며, 혹 자리에 그냥 앉아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리지 않겠느냐고 묻기까지 하는 것이 예의인데 한국인들은 혹 누가 끼어들기라도 할까봐 앞 다투어 통로를 빠져나간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 비교적 공항 시설이 낙후된 곳에서 흔히 당하는 일 중에 하나는, 처음에 줄을 설 때는 분명히 내가 가운 데 쯤 서 있었는데 막상 통과할 곳을 통과할 때는 언제나 내가 마지막 사람이 되는 것이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나를 앞지르는 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통관이나 검색을 조금 일찍 통과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새치기까지 불사하는지 모를 일이다.

가까운 일본인들은 있는 듯 없는 듯 항상 양보하고 정숙하며 예의를 중시하는데 우리는 왜 그렇지 못한가. 20년 쯤 전의 일이다. 그 때만해도 호놀루루 공항에 내리는 승객들에게는 fp이(꽃목걸이)를 걸어 주던 시절이다. 나는 그 공항에서 동경을 거쳐 김포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국 사람들이 앉아서는 안 되는 화분대에 걸터앉아 큰 소리로 잡담을 나누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공항 바닥에 둘러앉아 고스톱 판을 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나 창피해서 일본인들이 서 있는 대합실에 가서 그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못 본체 하는 것이었다.

근래에는 분당에 있는 한 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의료봉사를 자원한 이들이 탈레반에 의해 납치된 사건으로 온 국민이 가슴을 졸리고 있고 교회들마다 기도 소리가 날로 높아간다. 아프가니스탄은 과거 소련의 침공을 받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에 의해 정권이 소멸되다시피 된 치안이 불안한 국가이다. 가끔 시청하는 일본의 nhk 텔레비전에서는 해외여행을 가지 말아야 할 국가와 지역 및 피해야 할 일들을 시간마다 경고하고 있으며 일본인들은 그런 경고와 알림을 존중하고 꼭 지킨다고 알려졌다. 우리 사회에는 그런 서비스가 부족해보이며 국민들 또한 언전문제에는 불감증을 가진 듯이 보인다.

동남아의 어느 나라 관관지에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관광지의 해변에 심어진 코코넛 나무에 올라가서 열매 하나를 따서는 자랑스럽게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그 나라는 길에서는 담배도 피우지 못하게 하고 껌도 씹지 못하게 하는 사회 규율이 엄한 곳인데, 만약 경찰이나 경비원에게 발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영락없이 수천 불의 벌금형을 받거나 추방을 당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가 들고 있는 야자열매를 빼앗아 길 가에 놓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하게 했다. 하지 말라는 일을, 값어치도 없고 모험도 아닌 그런 일을 굳이 할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은 국제화시대, 국제적 예의가 필요한 시대이다. 여러 종교집회들과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보여주었던 우리의 질서의식과 예의를 국제사회에서도 실현해야 되겠다. 이 일에는 아무래도 종교인들이 앞장서야 할 것 같다.

/도한호 침례신학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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