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인사

내가 천사를 만난 것은 아산으로 발령을 받아서 취임식을 하던 날이었다. 천안에서만 10년 이상 근무하다가 낯선 환경으로 옮기는데 대한 불편함과 외곽지로 밀려 난 것 같다는 소외감으로 마음이 편치 않은 날이었다. 어떤 할머니가 내 옆을 황망하게 지나치시면서 행사가 아직 진행 중인지 물으셨다. 할머니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사무실로 들어선 할머니는 전임 소장님께 검은콩 한 봉지를 내 놓으시고 그간 보살펴주셔서 감사하다며 연신 허리를 굽히셨다. 사무실 안에는 퇴임식과 취임식을 겸하느라 화환과 화분이 가득 늘어서 있었는데 꽃다발 옆에 놓인 검은 비닐봉지에 자주 눈이 갔다. 꽃다발과 하객 틈에서 허리가 굽고 몸집이 작은 할머니가 어떤 분인가 몹시 궁급했다.

삼성에서 정년 퇴임식을 하시는 멋진 선배님께 나도 무언가 마음을 나눌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끼고 있던 18k반지를 선배님 손가락에 끼워 드렸다. 다음날, 그 할머니가 우리 영업소를 청소하시는 분이라는 걸 알았다. 새벽에 나와서 사원들이 출근하기 전에구석구석 정성을 들여 말끔히 청소를 해 놓으셨다. 나는 않아 있기가 불편했다. 연세가 지긋한 분이 일하시는데 뻔히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가 민망했었다. 다행이 할머니는 일찍 오시기 때문에 내가 출근할 시간이면 청소가 거의 끝나고는 했다. 끝나고 돌아가실 때 판촉물로 쓰는 치약을 한두 개 드렸더니 몇 번이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하셨다.

감사의 인사

오히려 내가 민망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첫 번째 수고비를 드리던 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한 달 내내 그렇게 일해서 가져가시는 돈은 고작 20만원 이었다. 여사원이 봉투를 주기에 무심코 내어 드렸더니 그 봉투를 받으시고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기도를 하셨다. 그냥 돌아서려다가 나도 마주서서 멋쩍게 서 있었다. 그 돈을 유용한 곳에 사용 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이 영업소에 무한한 발전이 있으라는 기도문을 엿들으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당연히 당신이 받아야할 노동의 대가이고 어찌 보면 형편없이 적은 보수라고 불평 할 수도 있는 금액인데 그토록 진지하게 감사표현을 하시는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헤프게 사용한 어떤 것들이 그것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값어치 있는 물건이 될까도 생각해 보았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아침에 청소를 하시는 그분의 표정은 참으로 맑다.

할머니의 웃음

우리들은 혹시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이 내게 웃어주면 덕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이 웃어주면 부탁 할게 있어서 아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그렇다면 한번쯤 할머니의 웃음을 보여주고 싶다. 덧니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니 얼굴은 천사의 모습이다. 아직도 나를 유 소장이라고 부르는 소장님이 지금도 그 반지를 간직하고 있다며 전화를 했다. 까맣게 잊었던 일이다. 칠순이 넘는 나이에 사무실을 오픈 했다며 소녀처럼 맑은 소리로 전화를 하는 선배님의 모습에서 할머니의 웃음이 떠오른다. 성공적인 노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내 곁에 있어서 나의 노년은 햇살 쨍쨍하다. 마음을 나눠 작은 일에도 늘 감사하는 행복한 노인이 되고 싶다.

▲ 유인순
천안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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