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공개…'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인증

▲ 천리포수목원 전경.

▨ 태안 천리포 수목원을 찾아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서해안의 푸른 보석으로 불리는 천리포수목원. 미국에서 귀화한 민병갈(carl ferris miller, 1921~2002) 설립자가 일평생을 바쳐 천리포의 민둥산을 1만 3000여 종의 꽃과 나무가 만발하는 숲으로 가꾼 곳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해풍이 심하게 불며 조금만 파도 소금기 섞인 흙이 나오던 박토에서 개원 30년 만에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받은 곳이기도 하다.
천리포수목원은 지난 1962년에 수목원 부지를 매입하고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식물을 심기 시작한 우리나라 1세대 수목원이지만 그동안 식물관련 전문가나 후원회원으로 가입된 사람 외에는 출입이 금지돼 있던 곳이라 사실상 그동안 비밀정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3월 1일부터 밀러가든을 비롯한 일부지역이 일반에 공개되면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수목의 학술. 연구. 보호의 목적을 중시한 수목원이 일반에 공개된 이유는 수목원 자체적인 재정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유류피해로 힘겨워하는 지역경제의 도움이 되고자 한 큰 뜻을 품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 수목원에 들어서면 푸른 바다와 파도소리, 상쾌한 바다내음과 함께 사연많은 나무들 사이로 풀내음 어우러져 여느 수목원과는 다른 첫인상을 풍긴다.
해송 사이 오솔길을 통과하면 30여년이 넘게 자란 나무들이 마치 숲 속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인간의 잣대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 않고, 스스로 환경에 적응한 모습 그대로의 나무와 풀들이 있어 오히려 더 매력적이게 느껴진다.
천리포수목원은 국내 자생종 뿐 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들여온 여러 품종이 있어 사시사철 푸르름을 느낄 수 있으며 다양한 꽃들을 만나볼 수 있다. 62ha(18만 7000여평)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 조성된 수목원은 크게 7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지역이 흩어져 있어 관리·작업상 불편한 점이 있지만 각 지역의 국지적 미기후 환경에 따라 다양한 식물 종류들을 적절히 배치할 수 있어 유리한 점도 있다.
특히 서쪽으로 바다와 접해 있어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난대성 상록활엽수들과 아한대성 식물들까지 다양한 식물들을 식재 할 수 있다. 자생종부터 세계 각국에서 다수의 수목 종류들을 수집하고, 세계 여러 나라 식물원 등과 잉여종자 교환을 통해 다양한 국외 수종을 확보했다.
그 중에서도 목련 400여 종류, 동백나무 380여 종류, 호랑가시나무류 370여 종류, 무궁화 250여 종류, 단풍나무 200여 종류 등이 집중적으로 수집됐다.
그 덕분에 수목원에는 평소에 흔히 보던 나무들 외에도 제 각각의 독특한 개성이 있는 희귀한 식물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식물이 식재되어 있다보니 365일 꽃을 볼 수 있는 것이 천리포수목원이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금도 '납매'라는 향기가 매혹적인 꽃을 볼 수 있고, 곳곳에 애기동백과 뿔남천이라는 꽃도 피어 있으니 수목원에 들르면 겨울꽃을 찾는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또한 크리스마스 시즌 카드나 엽서에 많이 나오고, 사랑의 열매로 알려져 있는 호랑가시나무의 빨간 열매도 아직까지 탐스럽게 열려있어 겨울의 낭만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다.
겨울 수목원에서 꽃도 아름답지만 혹자는 민얼굴의 자연을 마주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계절이라 한다. 봄이 시작되면 잎이나고, 꽃이 피면서 식물 그 자체의 모습을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가을철 낙엽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가 남게 된 수목들은 그제야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각양각색의 줄기표면과 땅을 지지하고 있는 우람한 뿌리근육, 하늘을 향해 뻗어져 있는 가지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게 된다.
반듯하게 깍아놓은 듯한 인공적인 정원을 보러 오는 입장객들은 수수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에 다소 실망할 수도 있지만, 더불어 사는 자연의 지혜를 배우고, 자연 그대로의 숲에서 편안함을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수목원이 없을 듯하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최대한 억제하는 방식으로 식물을 키우고 있어 각종 양서·파충류, 60여 종류의 조류가 함께 공존하고 있어 운이 좋으면 연못 뒤를 한가로이 헤엄치는 흰뺨검둥오리가족을 구경할 수도 있다.
풀과 나무, 바람과 햇살이 어우러져 자연의 아름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천리포수목원의 백미는 수목원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이다.
천리포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어 서해안의 알싸한 바다내음과 함께 싱그러운 숲의 향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해안전망대는 천리포수목원만의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2007년 기름유출 피해로 혹독한 시련을 맞았지만 태안을 살리고자 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다시 생명의 불씨를 지핀 이곳은 이전 보다 더 맑고, 깨끗한, 그리고 더 강인한 생명의 바다로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수목원은 바닷가에 인접한 탓에 해무(海霧)가 생겨 운치를 더해준다.
수목원 안에는 전통 한옥을 비롯한 일곱 채의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예약을 하면 숙박도 가능하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천리포해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수목원에서 겨울밤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천리포수목원에 들르게 된다면 가이드도 챙겨보자. 30명 이상의 단체일 경우 미리 예약하면 가이드와 함께 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 방문 하더라도 정기 가이드를 실시하고 있어 수목원의 역사를 비롯해 풀과 나무에 얽힌 재미있는 해설도 들을 수 있다.
또한 인근에는 만리포와 천리포해수욕장이 좌우로 있어 제철에 별미인 수산물도 맛볼수 있어 방학동안 가족이 함께 주말여행길로 추천할만한 아름다운 곳이다.
수목원에서는 수목보호를 위해 일체의 음식물과 촬영용 삼각대를 가져갈 수 없으니 참고하자. 이번 주말, 스산한 바람으로 허전한 마음 한 켠을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수목원에 들러 겨울 낭만으로 채워보는 건 어떨까?
/태안=장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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