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 김혜경 시인ㆍ한국문인협회 회원

일몰은 사라짐이다. 하루가 기울고 긴 인생 여정이 기우는 시간이다. 붉게 물드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 하루를 되돌아보고 살아 온 날들을 돌아보기 좋은 시간이 된다. 불현듯 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 앞의 골목길이 궁금해졌다.

코 흘리게 친구들과 손등이 터지도록 사방치기를 했었고 남의 집 담벼락에 낙서를 하고 달아나는 스릴을 만끽하기도 했던 곳이다. 골목길은 좀 으슥해야 제 맛이 난다.

지린내가 풍기는 모퉁이에는 큼직한 가위가 그려져 있어야하고 밤이면 뭔가가 뒤 꼭지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한기가 느껴져야 한다. 앞집에서 뒷집으로 부리나케 건너가는 쥐들의 달리기를 종종 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10분이면 족히 갈 수 있는 어린 시절의 골목길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지척의 거리인데도 선뜻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난하고 힘들었던 과거를 돌아보기 싫었기 때문이었을까. 가족에게 조차 곤궁했던 어린시절을 내보이기 싫었기 때문일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 골목이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랬다. 이제서 가난도 추억으로 간직할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그 골목에 들어서면 30여 년 전처럼 여드름투성이인 수줍은 소년이 밤새 쓴 편지를 들고 기다렸으면 좋겠다. `얼레리 꼴레리~` 순이를 놀리려고 쓰고 달아났던 서툰 낙서가 그대로 있을까. 옆집 언니를 따라다니다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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