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으로 인한 사회문제의 심각성이 점점 부각되고 저출산정책이 국가의 중요 이슈로 떠오른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합계출산율이 인구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2.1명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1983년의 일인데, 저출산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회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정도의 일이니 대응이 늦어도 한참을 늦었다.

결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도 저출산 현상의 한 요인이다. 고용과 소득불안정으로 인하여 경제적 자립에 자신감이 없고, 막대한 결혼 비용도 부담되는 청년층에서 결혼을 늦추거나 홀로서기를 선택하는 상황이다. 자아실현과 사회참여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 고학력 여성들은 인생의 고비마다에서 몇 번의 고뇌에 찬 갈등을 하게 된다. 결혼 적령기가 되어도 결혼을 할 것이냐, 일을 선택할 것이냐 갈림길에서 망설이게 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이를 낳을 것이냐, 말 것이냐, 출산은 한 번을 할 것이냐 두 번을 할 것이냐 결단을 하게 된다.

세상이 변하면 가치관도 변하고 사고방식도 달라진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고 개인적인 희생을 치르면서 헌신적으로 양육하던 모성을 기대하기에는 시대의 흐름이 너무 빠르게 달라졌다. 가정경영도 남성 혼자 벌어서 감당하기에는 힘에 부칠 만큼 소비행태나 지출의 씀씀이가 다양해 졌다. 엄청난 사교육비의 증가와 물질만능주의식 소비는 정규직이 아닌 임시 비정규직 알바형태로라도 여성들을 내몰고 있다. 더 이상 어머니는 낳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가족을 부양하고 집에서나 밖에서나 일하는 어머니로서의 존재감이 크다. 사회활동에도 참여하며 개성과 성공을 추구하는 멋진 어머니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은 주눅들고 움츠러든다.

일하는 여성을 원하는 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여성들은 고뇌한다. 그녀들은 아들 딸 구별 않고 낳아 잘 기르자는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부모들의 성차별없는 관심과 사랑아래 고른 교육의 혜택을 받고 잘 길러졌다. 그러나 사회인으로 발을 내딛고 인생의 날개를 펴기 시작하면 곧 누군가의 가족으로 새롭게 편입되면서 낯선 문화에도 적응해야 하고, 출산이라도 할라치면 자기의 시간과 경제적 자원의 많은 양을 내어 놓아야 하고, 아니라면 누군가의 절대적인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출산율 하락현상은 우리사회의 여러 현상과 경제 구조를 반영한다. 적정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려면 전반적인 사회 정책 구조를 진단하고,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한동안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면서 결혼과 출산 테두리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각 지자체들이 '출산 축하금'이나 '출산용품'을 지급하는 것에서부터, '셋째아 보육료'지원 등 출산장려정책을 펴기 시작하고, 최근에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낙태근절 캠페인'를 비롯해서 낙태를 금지하려는 정책들도 검토되고 있다. 1960년대 인구조절계획으로 피임과 낙태를 장려했던 역사의 연장성상에서 아이러니한 현상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성의 몸을 국가발전과 유지를 위한 출산의 도구로 전락시켰던 개발독재의 망령이 성적인 주도권을 쥐는 남성의 의무는 접어두고 관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면서 여성의 자율권을 통제하는 반인권적 관점으로 드러난다.

여성은 더 이상 출산율 제고의 대상이 아니다. 여성의 몸을 출산에 대한 인센티브 혹은 단속이라는 유인과 통제의 대상으로 보면 안된다. 출산장려 정책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 동시에 여성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담고 있는 정책이어야 한다. 교육·경제·노동정책 등 사회정책구조의 전반적인 변화와 유기적인 통합을 위해 다면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정책추진과정에 성평등한 시각이 반영되고 출산과 양육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 삶의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해지기를 희망한다.

▲ 김경희 대전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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