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는 고암 이응노 서거 20주기 특별전 <non-painting>을 열어 60~70년대 그의 문자추상과 꼴라주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그의 문자추상은 문자와 이미지, 의미와 비의미, 동양과 서양, 질료와 형태의 대립이 녹아 하나의 공간에 휘감기는 상호역전의 기백을 보여준다.
고암은 규범적인 언어에서 개별 문자들을 추출한 뒤 형태를 자유롭게 변형한다. 그는 문자의 가치를 의미나 소리의 기능이나 형체나 문자들의 결합 체계 속의 위치에 두는 기존 관념을 깨고, 문자의 본질적인 가치를 드러내고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정형의 문자들을 있는 그대로 자신의 문자로 삼는다. 다른 외부적인 기능들로부터 해방된 추상문자는 그 자체만으로 충족되는 '자기목적적autotelic'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내면적 진실 '문자추상'


그는 이들 변형된 문자들을 재구성하는데, 이때 문자를 선이 아닌 두꺼운 면으로 채색하거나 천을 잘라 바탕천에 붙임으로써 문자에 질감과 입체감, 색상을 부여한다. 이처럼 그의 작품들은 기존 문자 체제를 파괴한 뒤 다시 문자에 부피와 질감, 색상을 입히고 재조합하여 문자와 회화의 경계와 벽이 허물어져 서로 넘나드는 내적인 이행의 공간을 만든다.
또한 기존 문자의 형체에서 벗어나 실재하는 문자의 형체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문자로 느껴지는 그의 작품들은 비의미의 의미, 감성의 의미, 심리적이고 지각적인 감각의 의미를 표현한다. 비정형적인 형태로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내면적 진실"을 표현하는 그의 문자추상은 "일그러진 형상과 질감으로 아카데믹하고 정형화된 추상에 대한 반동을 표현하는 격정적이며 주관적인" 프랑스의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비정형)'과 연결된다.
그의 추상문자들이 부자유스럽게 밀집되어 몸을 포개고 있는 형상은 '앵포르멜' 작품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폐쇄된 상황의 억압된 인간의 극한적인 심리'의 표현에 가닿는다.
실제로 앵포르멜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감금과 심리적 억압을 겪고 이 경험을 작품에 토로하였는데, 이응노도 문자추상에서 그가 체험한 감금의 기억을 철자들이 다른 철자들과 몸에 몸이 닿아 서로 기댄 채 구속되어 있는 형태로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속 '개체 독립' 표출

하지만 이때 문자의 테두리선은 부자유하게 서로 밀착되어 있는 개별 문자의 고유성을 지켜줌으로써 억압 속의 자유, 집단 속의 개체의 독립과 개성에 대한 강렬한 소망과 의지를 표방한다. 테두리선은 기존 체제에서 추출된 철자들을 하나의 거대한 형체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훼손될 수 있는 개별 문자들의 독자성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 테두리선들은 다른 관점에서 문자가 면으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제거되었던 선을 문자에 회복시켜준다.
섬과 산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섬은 산으로 산은 섬으로 이어지듯이, 고암에게서 문자와 이미지, 구상과 추상, 의미와 비의미는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대립된 요소가 아니라 각자 자기 자신의 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낯선 자아의 모습이다. 박수진이 말하는 무가 유로 돌아왔다가, 유에서 무가 다시 돌아나가는 도가의 "역현상적 강긍정의 논리"가 고암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순환의 에너지를 설명해준다. 평생 집과 아틀리에를 오가며 "눈 뜨면 자기 전까지 그림뿐"이라고 고백했던 그의 진정성과 열정이, "소박, 깨끗, 고상하면서도 세련된 율동과 기백"이 그의 문자추상의 역동적인 비정형에서 번져 나온다.

▲ 황혜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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