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곧잘 하는 말 가운데 <국민의 뜻>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이 국민의 뜻이라는 말은 참으로 순수하고 위대한 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뜻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상투적으로 지껄이는 이 국민의 뜻이라는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모호한 느낌을 준다. 대부분 아전인수격인데다, 어느 경우에는 사기를 치는 뉴앙스를 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이 이 말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자신이 소속된 정당이나 자기 개인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활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국민을 등에 업고 국민을 팔기도 한다. 정치인이 무슨 정견을 발표하면서 이것은 국민의 뜻이기도 합니다 라고 하면, 듣고 있는 국민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의할 수도 없는 모호한 느낌을 받는다. 왜냐하면, 단 한명의 국민도 국민이고 천만명의 국민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어가 지니고 있는 함정이 있다. 이러한 언어의 함정을 교모하게 활용하므로서, 정치인들은 국민을 우매화시킨다. 독제 정권이 항용 사용하는 통치 수단으로 국민을 우매화시키기도 하지만, 독제 정권이 아니라고 해도, 정치인들이 계획적으로 사용하든, 무의식적인 것이든 <국민의 뜻>이라는 말을 뱉는 순간 우민화 정치의 죄를 범하기 쉽다.

최근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가 세종시 문제를 놓고 시비를 가리면서이다. 야당과 여당, 그리고 여당 가운데서도 친이와 친박 진영에서 국민의 뜻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한쪽에서는 원안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수정안이 국민의 뜻이라고 한다.대관절 국민의 뜻은 어느 쪽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두 진영의 말이 모두 틀리기도 하면서 동시에 모두 맞는 말이다. 정답이 없으니까 서로 상반된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볼 때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국민 중 일부의 뜻은 이렇다고 생각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일부라는 정직한 말을 넣으면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으면 않았지 일부라는 말을 사용할 리가 없다. 그래도 국민의 뜻이라는 말에 정의를 내려야 한다면 국민투표를 해서 다수결이 나왔을 때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모든 사안마다 국민투표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국민 투표로 확인하지 않은 사안을 국민의 뜻이라고 함부로 말하면 기소한다는 형법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치인이 그 말을 제멋대로 쓴다고 해서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중세기에 유럽에서 십자군이 아랍 진영이 차지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공격해서 빼앗았다. 시체가 널려있는 광장에 나타난 십자군 지휘관이 부하 장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성도를 빼앗기 위해 살인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다. 과연 하나님의 뜻인지, 하나님에게 확인해 보지 않은 일이라서 알 수 없지만, 그 지휘관은 살인과 약탈에 대한 면제부를 얻기 위해, 또는 죄의식을 종교적으로 면피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반드시 같은 의미의 비유는 아니라고 해도, 정치인이 국민의 뜻이라고 하면서 기염을 토할 때는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 정현웅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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