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우리나라의 옛날 엽전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 특히 조선시대 대중들의 상거래에 중요한 역할을 한 상평통보는 현재 가장 많이 남아있고, 왕조시대에서 많이 찍어내어 유통시킨 동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발행된 상평통보의 종류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엽전 수집가들을 위해 동전을 탁본해서 책자로 나오고 있지만, 그곳에 실린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없다. 엽전 연구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대충 4천 3백여종이 된다고 하지만, 한국인 수집가 가운데 4천3백여종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일본의 화폐 수집가에게서 상평통보 4천3백종을 소장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도록을 만드는 곳에서, 그 희귀한 엽전을 탁본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수집가를 만나는 아이러니한 일이 있었다.

한국 수집가에게 없는 과거 유물이 일본의 수집가 손에 있는 일은 비단 엽전뿐만이 아니다.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수많은 보물들이 일본의 골동품 수집가들의 손에 넘어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한국의 전국을 뒤져 보물을 끌어모은 일이 있다. 이 사람은 상당한 재력가로 대낮에도 인부들을 데리고 한국의 고분을 파헤쳐 도굴했으며, 문화재 암거래상들이 그의 집에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모은 보물은 수천점이 되는데, 1945년에 패전하면서 그는 급히 도망을 가느라고 일부 도자기를 비롯한 보물 일부를 땅속에 묻어둔 일이 있다. 그가 살았던 집에서 전기 배관 공사를 하다가 그 보물을 발견해서 한때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죽은 후에 그 아들이 한국의 보물 천여점을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신라 금관 관모를 비롯한 금동 유물 8점이 중요문화재, 청동기 견갑형 동기 등 31점이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되어 한국의 유물이 일본에서 국보로 둔갑한다.

한국의 유물이 가장 많이 유출된 나라가 일본인데, 그것은 이웃 나라라는 거리상의 이유 때문이라기보다, 과거 침략 전쟁과 연관이 있다. 한차례 유물을 약탈해 간 때가 임진왜란 시기다. 일본의 장군들은 조선의 성을 점령하고는 전리품으로 보물들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절에 보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사찰을 습격해서 옛날 탱화를 비롯한 미술품이나 골동품을 가져갔다. 그래서 우리나라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건립이 된 고찰에 소장되어 있던 탱화와 금동 불상 상당수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탱화는 싹쓸이 하다시피 가져갔는데, 지금도 일본 절에 가면 그때 가져간 탱화가 자기들 것인냥 걸려있다. 임진왜란 시기에 많이 가져간 것이 도자기인데, 고려시대의 상감청자는 우리나라 수집가들이나, 박물관에 남아있는 것보다 일본 수집가 손에 더 많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일본이 또한번 유물을 약탈한 시기가 일제 식민지 때이다. 이때는 합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노골적으로 모았다. 문화재 연구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일본 고고학자들을 동원해서 가져가기도 했고, 앞서 말한 재력가 오구라 다케노스케처럼 도굴하거나 사들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문화재 유물은 그 나라 조상의 예술과 정신이 배어있는 유산이다. 희귀한 엽전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정도야 이해하겠지만, 신라 시대 금동 관모같은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는 당연히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국제 사회에서 지켜야 하는 나라간의 예술정신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정현웅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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